십계명 - 마음에 새겨야 할 하나님의 명령 현대인을 위한 신앙의 기초
케빈 드영 지음, 조계광 옮김 / 생명의말씀사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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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교회의 주일학교에서는 성경 암송대회, 성경 퀴즈대회와 같은 행사들을 자주 하곤했다. 그러면서 더불어 십계명 암송과 같은 과제도 주어졌었기에 성경 맨 뒷장을 펼치면 항상 수록되어 있던 십계명과 관련구절들을 열심히 암기했던 경험이 떠오른다. 어린 시절 상품에 눈이 멀어(?) 도대체 십계명이 뭔지도 모르고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도 모른체 무조건 글자 글대로 기계적 암기를 행했던 나의 어린시절 어리숙한 모습을 떠올리며 한권의 책을 펼쳐들었으니 그야말로 책 제목 자체가 <십계명>이다. 신앙 생활을 오래했다고 자부하는 사람들도 그 명확한 개념과 진정한 의미를 설명하라고 하면 버벅일 수 밖에 없는 제법 진중한 주제인 십계명을 다룬 본서를 보고서 일부 독자는 아예 쳐다보지도 않은 채 그냥 예수 잘 믿어 복받자고 말하는 캐쥬얼한 신앙도서를 뒤적일 수도 있다. 그러나 책의 저자를 보는 순간 나는 이 책의 가치를 대번 알아봤다. 저자는 미국의 대표적 개혁주의 신학자이며 목회자인 '케빈 드영' 이다. 케빈 드영의 저작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나는 이 책을 손에 쥐고, 만면에 행복한 미소를 띠었다.

십계명 하면 대부분의 신자들은 고리타분한 율법, 구약시대의 먼지가 풀풀 날리는 유물과 같은 가르침으로 치부하며 은혜의 시대인 지금을 살아가가는 우리와는 별로 관련 없는 이야기라 생각하며 터부시하는 경향이 없지 않아 있다. 이러한 십계명에 대한 오해와 누명이 팽배한 요즘 본서를 통해 저자는 출애굽기 20장과 신명기 5장에 등장하는 십계명에 관한 내용을 하나하나 친절한 필치로 십계명이 무엇이고, 그 십계명이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떠한 의미로 다가오며 왜 우리는 십계명을 지키고 그 말씀에 순종해야하는 가에 관한 원론적이면서도 동시에 실제적인 가르침을 설파한다. 구약시대 이스라엘 민족에게 주어진 제한적 율법의 하나로 생각하고 오해하는 십계명에 대한 참된 가르침을 통해 독자는 바른 신자의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우리 행위의 기준과 신앙의 표본으로서 십계명을 이해하고, 믿음의 규칙과 살아야 할 삶의 교훈으로서의 십계명을 바라봄으로서 우리 자신과 하나님과의 관계, 우리와 우리를 둘러 싼 이 세상 타자들과의 관계에 대한 깊은 통찰을 얻을 수 있다.

십계명에 대한 많은 설교와 가르침들이 넘쳐나지만 책장을 넘기며 나는 개인적으로 본서와 같이 성경에 기초한 바른 신학적 지식, 특별히 건강한 개혁신학에 바탕을 둔 교리적 가르침에 의해 기록되어진 본서의 탁월함을 발견하게 된다. 더불어 이는 저자가 가진 성경을 해석하는 그 비범한 신학적 혜안과 깊은 학문적 역량과 더불어 바른 신앙을 소유한 저자의 깊은 경건 속에서 가능한 작업이었음을 직감하게 된다.

마지막 책장을 덮는 순간까지 어느 것 하나버릴 수 없이 소중한 책의 내용들 가운데 특별히 개인적으로 마음 한켠을 울린 몇개의 내용들이 떠오른다. 십계명의 제 2계명인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그것들에 절하지도 말고 섬기지 말라는 계명에 대한 저자의 탁월한 견해에 대해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대부분의 신자들은 이 말씀을 우상숭배하지 말라는 정도의 간략한 계명으로 이해한다. 그리고 기존에 우리는 교회에서 그렇게 배워왔다. 그러나 저자는 제 2계명의 말씀을 성경적 범위 안에서 더욱 더 실제적인 우리네 삶의 현장 가운데로 확장시킨다. 그것은 창세기 1장 26~27절 말씀을 토대로 우리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창조된 존재라는 사실에 대한 자각으로부터 출발한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이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는 그분의 형상을 만드는 우상숭배를 행한다. 그러나 반면 하나님의 형상이 존재하는 곳에서는 그분의 형상(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바 된 우리의 이웃)을 무시한다. 다른 이들을 악독하게 대하고, 그릇된 방식으로 대하는 것은 우상숭배와 더불어 하나님의 형상을 훼손하는 또 하나의 죄악이라는 이 충격적인 해석을 맞닥뜨리고 난 후 나는 한동안 책장을 넘기지 못했다. 그동안 내가 그토록 무시했던 여러 사람의 얼굴이 필름처럼 스쳐 지나가며 다름아닌 내가 바로 하나님의 형상을 무시했던 또 한명의 우상숭배자였음을 회개하게 된다.

또 한가지는 우상숭배가 아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려야 하는 신자의 의무를 통해 올바른 예배의 모습을 상고하게 만든다. 오늘날의 많은 기독교 리더들과 교회는 사람들의 필요와 욕구를 중심으로 예배를 구성하려고 노력한다. 매주 다채로운 행사를 준비하느라 많은 예산을 쏟아붓는다. 그러나 책을 통해 저자는 예배를 위한 하나님의 계획은 항상 반문화적임을 말한다. 그러면서 말씀은 사람들을 인도하는 수단이자 그들이 도달해야 할 목적임을 강조한다. 인내심을 가지고 성경의 진리를 하나씩 신중하게 가르치는 방식을 선택해야 한다. 왜냐하면 태초에 연극이나 그림이나 행사가 아닌 말씀이 있었기 때문임을 말한다. 이러한 저자의 가르침을 통해 사람들의 입맛에 맞춰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는 부드럽고 달콤한 쉬폰 케익과 같은 조국 교회 예배의 현장이 떠올라 속이 쓰리다.

마지막으로 제 3계명인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는 말씀의 가르침을 통해 하나님 이름의 고귀함과 순결함은 시대를 초월하여 반드시 지켜지고 따라야 할 계명임을 배운다. 우리는 너무나 쉽게 하나님의 이름을 장난스럽게 사용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가지고 농담을 하며 웃고 떠든다. 그것이 얼마나 무서운 신성모독이며 무거운 죄악임을 모른체 말이다. 저자는 이 부분에 대해서도 명확하게 짚고 넘어간다. 결코 타협은 없다. 이러한 사람들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죄 없다 말씀하지 않으실 것이다.

더불어 제 3계명을 통해 우리가 흔히들 실수하며 저지르는 잘못된 신앙의 태도를 지적하는 데 그것은 바로 인간이 세운 결정이나 계획을 뒷받침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이름, 권위를 마음대로 끌어다 쓰는 그릇된 신앙 태도에 관한 점이다. 신앙 생활을 조금 했다고 하는 사람들이 흔히 자기도 모르게 이러한 오류에 잘 빠진다. "하나님이 내게 이것을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것을 하기 원하십니다"와 같이 자신의 어떠한 목적이나 어떠함을 드러내기 위해서 마치 자신이 하나님의 직통계시를 받은 것 마냥 하나님의 이름과 권위를 끌어다 사용하는 모든 행위들에 대해 저자는 이 또한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사용하는 것임을 이야기한다. 책을 읽는 내내 낯이 뜨거워서 견딜 수 없었다.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에게 특별계시로서 성경을 주셨음에도 나 또한 마치 내가 대단히 영적인 사람인 것 마냥 하나님의 이름을 나의 목적을 관철시키려는 수단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갖다 붙이곤 했기에 책의 따끔한 가르침에 부끄러움과 함께 겸허히 머리를 숙이게 된다.

얼마 전 초등학생인 첫째 녀석이 교회 주일학교를 통해 과제를 받아왔다. 부모님과 함께 공부하는 성경공부라고 매일마다 해야한다는 것이다. 받아 온 책을 펼쳐들고 눈을 의심했다. 그것은 다름아닌 교리문답이었다. 책을 받아든 내 가슴이 벅찬 감동으로 어찌나 뛰든지...아이들에게 교리문답을 하도록 가정에 과제를 내주신 교회 전도사님의 신학적 혜안과 목회 방침을 느끼며 그분을 다시보게 되었다. 어린 아이들의 사고와 가치관이 세속화 되기 전 하나님의 말씀을 철저하게 암기시키고, 가르쳤던 청교도들의 교육 방식이 원래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임에도 이제는 그러한 모습이 사라져버린 교회 주일학교의 모습 속에서 이러한 과제를 붙잡고 감격하는 내 모습이 오히려 이상스럽게 여겨진다.

사람들은 교회가 타락했다고 염려하며 교회가 세속화 되었다고 탄식한다. 연이어서 터지는 목회자들의 성범죄, 횡령, 담임목회직 세습 등과 같은 교계의 아픔들을 보며 망연자실해한다. 교회 윤리는 땅에 떨어진지 오래다. 다들 앞이 보이지 않는다고 아웅성이다. 그러나 나는 방금 언급한 아이들의 교리문답을 독려하는 목회자들이 있다는 사실과 함께 본서와 같은 탁월한 저작 속에서 실낱같은 희망의 빛을 본다. 그것은 back to basic! 기본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떠들썩하고, 화려한 프로그램들을 내려놓고 오직 그분의 계명, 말씀으로 돌아가는 것만이 조국 교회가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500년 전 죽음이 일상화 되어버린 그 암흑의 중세교회 역사 속에서 'post tenebras lux'(어두움 후에 빛)라는 종교개혁의 슬로건을 내걸고 기본으로 돌아가기 위해 목숨을 바쳐 로마 카톨릭과 맞선 종교개혁 선진들의 핏발 선 외침이 본서의 마지막 뚜껑을 덮는 나의 귓가를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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