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터의 로마서 주석 세계기독교고전 41
마르틴 루터 지음, 박문재 옮김 / CH북스(크리스천다이제스트)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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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개봉하여 300만명이라는 적지 않은 관객을 동원했고, 한국 교회에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던 '다빈치 코드' 라는 영화가 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숨겨진 비밀에 대해 밝히려는 자와 숨기려는 자들간의 쫓고 쫓기는 긴장감을 잘 묘사한 영화였는데 내용 중 '오푸스 데이'라는 카톨릭 단체에서 파견된 사제가 윗옷을 벗고, 채찍과 같은 고문도구로 자신의 몸을 치며 혹사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인간의 솟아나는 정욕과 욕망을 잠재우기 위해서 엄격한 규율에 바탕을 둔 고행을 통해 스스로에게 고통을 가하는 모습을 보며 인간 영혼이 진정한 쉼과 평안을 누리기 위해서 저렇게까지 하는 것이 옳은가 생각한 적이 있다.

 

오늘 소개하는 책의 저자인 '마르틴 루터' 는 16세기 중세 어두운 터널과 같은 시대를 살다간 인물로서 우리에게는 위대한 종교개혁자로 알려진 인물이다. 익히 알듯이 루터는 젊은 시절 세찬 폭풍우 속에서 자신이 서 있는 주변의 큰 나무를 두 동강 내버리는 벼락을 목격한 후 극심한 두려움에 사로잡혀 수도사가 되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수도원에 들어가 수도사가 되었지만 정작 자신의 영혼과 내면은 여전히 구원에 대한 확실함이 없는 공허함과 두려움의 상태 그대로였다. 이러한 상황속에서 만난 로마서 1장 17절의 말씀은 그의 어두운 영혼에 한줄기 환한 빛으로 다가온다.

 

서두에서 묘사한 영화 속 사제와 같이 자신의 고행을 통한 스스로의 노력과 의로움으로 구원을 얻기 위해 몸부림을 치지만 그러한 노력은 모두 다 헛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오직 구원은 하나님의 의로만이 가능한 것이며 그 하나님의 의는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드러나고 의로우신 한 분 예수를 믿는 믿음 안에서만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한 자각이 바로 마르틴 루터의 영혼을 사로 잡았다.

 

본서는 바로 이와 같이 루터가 자신의 삶을 근본적으로 뒤집어 놓은 신약성경 로마서의 말씀을 주석한 주석서이다.로마서는 성경 중의 성경이라고 불리는 책으로서 기독교의 근본적인 진리의 정수가 가득한 말 그대로 진리의 보고 그 자체이다. 사도 바울의 서신 중 가장 중요하다고 꼽히는 로마서는 문체가 유려하고 의미 전달에 있어서 매우 학구적이라고 평가되어지는 서신서이다. 이러한 로마서를 탁월한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가 주석해서 출간한 책이니 본서의 가치는 이루말할 수 없이 크다. 얼마 전 서평한 책 중에 <존 웨슬리의 일기>가 있다. 감리교의 창시자이며 순회 전도자로서 한평생을 바친 존 웨슬리 목사의 일대기를 기록한 책을 읽으며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런데 웨슬리의 회심 또한 앨더스게이트 거리의 어느 모임에서 누군가에 의해서 읽혀지고 있던 <루터의 로마서 주석> 서문을 통해서였다는 사실은 본서가 가진 그 가치를 한층 더 빛내준다.

 

우선 본서는 로마서가 16장으로 되어있기에 내용의 구성면에 있어서도 동일한 진행 순서를 따른다. 각 장의 구절을 제시하고 그에 따른 자신의 신학적 견해와 더불어 성경 구절 하나하나를 상세하게 주석한다. 로마서를 읽어 본 그리스도인 독자라면 로마서가 말하는 핵심 주제를 알 것이다. 그것은 바로 '이신칭의' 즉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 라는 가장 중요한 명제이다. 로마서는 인간의 어떠한 행위와 율법도 인간을 구원에 이르게하는 능력이 없음을 말하며 오직 인간구원의 근거는 하나님의 의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개인적으로 루터를 회심하게 만든 1장 17절의 말씀을 루터는 어떻게 주석했을까 매우 궁금했고, 본문을 통해 그 부분을 접하고서 루터의 탁월함에 고개를 끄덕이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것은 바로 루터가 믿음과 행함의 균형을 잃지 않기 위한 고심함의 흔적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루터는 분명 회심하기 전 영화 속 사제와 같이 자신의 영혼 구원을 위해 스스로 고행을 하며 인간의 의를 의지했던 사람이었다. 즉 의로운 행함만이 인간 영혼 구원의 근거라고 여겼던 자신의 어리석은 견해를 뒤로하고 진리에 눈 뜬 이후 그는 아마 인간의 노력과 행함에 대해 터부시하는 마음이 없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가 행함을 강조한 야고보서를 지푸라기 서신이라고 폄하했다는 사실을 볼 때 행함에 대한 그의 견해는 별로 우호적이지 못했을 것이라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루터는 자신을 회심으로 이끈 1장 17절의 주석을 통해 믿음과 행함의 균형을 이야기하는 단초를 남긴다.

 

"믿음에서 믿음으로" 라는 말은 신자의 믿음이 점점 더 자라서 의롭다 여기심을 받은 이가 자신의 삶 속에서 점점 더 의로워진다는 계속된 성화를 의미한다. 루터는 바로 이점을 간과하지 않았다. 자신을 옭아매고 있던 인간의 노력과 행함을 통한 자기의의 추구에 대한 진저리쳐지는 경험 속에서 루터는 신자의 삶은 믿음을 통해 의로움을 얻지만 믿음을 통해 구원받고 의로워진 진정한 신자의 삶과 그 믿음은 결국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착한 행실을 통해서 증명되어져야 한다는 균형잡힌 성화의 개념을 결코 놓치지 않았다. 즉 신자의 믿음과 행함은 따로 떼어놓고 생각해야 하는 개념이 아니라 함께 간다는 의미이다. 이 부분에서 루터의 비범함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인간의 율법과 노력, 선한 행실, 극도의 금욕과 자기절제, 청빈한 삶, 구제와 자선 등 인간이 인간으로서 행할 수 있는 최상의 열심이 인간 영혼 구원의 근거가 될 수 없음을 로마서의 저자 사도 바울은 말한다. 공교롭게도 로마서의 저자인 회심 전 바울은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었고,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며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으로는 흠이 없는 자라는 엄청난 자기의에 사로잡혀 있었다. 이러한 그가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는 대반전의 서신을 작성했다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컬하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러한 로마서의 주석을 동일한 경험을 했던 마르틴 루터가 기록했다는 사실 또한 독자로 하여금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만든다. 복음의 정수가 담긴 로마서를 펼친 후 본서를 함께 놓고 읽어 내려간다면 로마서에서 사도 바울이 말하는 메시지에 대한 깊은 이해가 싹트는 경험을 하게 되리라 본다. 더워지는 날씨 속에서 차분히 성경과 루터의 로마서 주석을 펼쳐들고 그 안에 담긴 진리의 만찬을 경험해보는 것은 초여름 더위를 맞이하여 일종의 깊은 영적 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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