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기도 학교 - 앤드류 머레이 기도론 전집 세계기독교고전 60
앤드류 머리 지음, 김원주 옮김 / CH북스(크리스천다이제스트)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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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부터 우리 집 2호의 옹알이가 시작되었다. 한 두 마디 정체불명의 외계어를 연신 내밷으며 간혹 무엇인가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는 상황을 만나면 급기야 하이톤의 외마디 비명까지 콜라보레이션 하고는 한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나는 결코 알아들을 수 없는 외계어를 엄마인 아내는 기가막히게 알아듣고 반응한다는 사실이다. 정말 신기하고 재미있다. 엄마와 아이의 그 원초적인 대화의 현장을 곁에서 물끄러미 지켜보고 있노라면 문득 신자로서 하나님과 그분을 믿고 따르는 신자들간의 관계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우리 영혼의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께 대한 자녀된 신자의 옹알이는 바로 우리가 하나님 그분께 올려드리는 '기도'로 표현되어진다. 누구도 알아듣기 어려운 아이의 옹알이를 엄마이기에 알아듣고 반응해줄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기도의 신비는 바로 이와 같다. 불신자들은 결코 이해할 수 없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향한 신자의 기도는 오직 하나님과 그분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과의 은밀한 대화이며 소통의 방법이다.

그만큼 기독교 신자들에게 있어서 기도는 말씀, 찬양과 더불어 신앙의 요소 중 빼놓을 수 없는 가장 중요한 한가지이다. 이러한 중요한 기도에 관한 내용을 이야기하는 신앙서적들은 이미 서점의 종교분야 매대와 서가에 가면 차고 넘칠 정도로 많다. 그러나 오늘 내가 소개하는 이 책은 그러한 많은 기도에 관한 책들 가운데서도 손에 꼽는 기도에 관한 최고의 고전이며 무게감있는 저작이다. 19세기 남아프리카공화국 화란개혁교회의 지도자였던 '앤드류 머레이' 목사의 기도에 관한 고전인 <그리스도의 기도학교>는 CH북스 출판사에서 원래 총 4권의 기도에 관한 책들을 한권으로 통합하여 엮음으로서 기도론 전집으로 탄생시킨 것이다.

1권에서는 신자들이 기도가 무엇이고 평생을 기도로 사셨던 그리스도를 본받아 기도의 사람으로 살아가는 삶에 대한 성경적인 원칙들을 다룬다. 2권은 특별히 목사와 장로들이라는 특정한 독자층을 염두해서 기록되었다. 영적인 일에 있어서 기도가 가지는 중요성에 대한 깊은 가르침을 기술했는데 읽다보면 반드시 교회의 리더십들 뿐 아니라 일반적인 신자들 모두에게 필요한 기도 생활에 관한 지침들을 발견하게 된다. 이어지는 3권과 4권에서는 우리가 자신만을 위한 지협적인 기도의 모습에서 탈피하여 나 이외의 것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중보기도' 에 관한 상세한 내용을 설명한다. 성경에서 '도고'라고도 표현되어지는 중보기도의 정의와 최고의 중보기도자셨던 그리스도의 기도자로서의 모범 그리고 중보기도의 사역을 통해 이루어지는 위대한 사역의 열매들에 관한 기록들이 정확하면서도 빼곡히 그러나 매우 따뜻한 필치로 기록되어 있다. 앤드류 머레이가 개혁주의 목회자이지만 오순절이나 감리교와 같은 신학적 성향이 다른 교단들과의 열린 교류를 추구했던 인물이었기에 그의 많은 책들을 통해 공통적으로 발견하게 되는 사실 한가지는 그의 책들 전면에 흐르는 부드럽고 겸손한 목회자의 목양적 마인드이다.

기도는 호흡이며 하나님과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말한다. 기도의 연속성을 대변해주는 표현이다. 인간이 단 몇분도 숨을 멈출 수 없듯이 크고 작은 기도 또한 하나님 앞에서 끊임없이 고백되어지고 올려져야 한다는 사실이 기도의 중요성을 다시금 깨닫게 만든다. 그렇기에 저자는 이렇게 중요한 기도를 그리스도께서 선생되시는 <그리스도의 기도학교>에 입학하여 열심히 배워야 한다고 말한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주여!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쳐주시옵소서!" 라고 간청했던 것과 같이 말이다.

개인적으로 책을 읽으며 깨닫고 배우게 된 사실 몇가지가 있다. 우리가 열심히 기도하지만 눈에 보여지는 기도의 결과물이나 기대하였던 열매가 삶 속에서 없을 때 대부분의 신자들은 실망하며 낙심한다. 그리고 나의 기도를 받으시는 하나님에 대한 회의와 기도를 듣지 않으시는 하나님이라는 비뚫어진 아버지상을 갖게 될 수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자녀들의 기도를 모두 들으신다. 단지 기도의 응답이 더디거나 기대했던 기도의 열매가 없는 것은 하나님의 잘못이 아니라 기도하는 우리의 삶이 하나님 앞에서 온전하지 못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는 가르침이다. 거룩한 하나님께 드려지는 기도자의 삶 자체가 마땅히 거룩한 산제물로서 드려져야만 함에도 불구하고 세상이 가져다 주는 쾌락과 즐거움의 불순물, 각종 염려와 불안, 불신의 찌끼들이 한데 어우러진 기도가 어떻게 거룩하신 하나님의 응답과 기도의 열매를 가져올 수 있겠는가?

그리고 또 한가지는 기도의 능력에 관한 저자의 통찰이다. 그것은 바로 위에서도 잠간 언급했던 성별에 관한 가르침이다. 저자는 기도자들이 기도의 능력을 덧입는 것에 대한 내용을 다루면서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께서 적극적으로 금지하지 않으셨거나 죄라고 단정하지 않은 것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이라고 여기는 그리스도인들이 많다. 그래서 많은 신자들은 이 세상의 것들을 가능한 많이 취하려고 발버둥친다. 그러나 거룩하게 구별된 즉 성별된 사람들은 전투에 필요한 것만을 지니는 병사와 같다. 세상사에 얽매이기를 두려워하는 이런 성별된 사람은 주님과 주님을 섬기는 일에 특별히 구별된 나실인의 삶을 살려고 애쓴다. 저자는 이처럼 정당한 것조차 자발적으로 성별하는 사람만이 기도의 능력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급변하는 세계 속에서 세상은 불신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 하나님을 믿는 신자들의 귀에도 세상의 소리들을 속삭인다. 고액의 연봉을 받는 직업적 성공, 넒은 평수의 고급 아파트와 재산 증식 목적의 부동산, 든든한 은행계좌와 유무형의 자산들, 고가의 외제차, 누구도 감히 깔볼 수 없는 최고의 학벌, 자녀들의 학업적 성공, 누구나 부러워하는 몸매와 미모 등등 가질 수 있는 것을 모두 가질 때만이 인간은 최고의 행복을 누릴 수 있다고 말이다. 위에 나열한 가치중립적인 유무형의 요소들이 죄가 되지 않지만 주님과 주님을 섬기는 일에 있어서 반드시 취하기 위해 달음박질 할만한 더 큰 가치가 있는가는 의문이다. 가진 것을 지키기 위한 몸부림이 오히려 삶의 무게, 보이지 않는 짐으로서의 느낌으로 더 강하게 다가오지 않을까? 얻을 수 있고 가질 수 있는 능력이 되지만 때로는 포기함으로서 자신의 삶을 라이트하게 만들어주는 자발적 성별의 선택은 우리가 더 겸손하고 겸허하게 하나님만 바라며 기도할 수 있도록 이끄는 기도의 능력을 우리의 삶 속에 더할 수 있다.

몇해 전 입맛이 동해서 한동안 과식을 한 후 체중이 무섭게 늘어난 적이 있다. 겉으로 보이는 미용적인 측면은 차치하고서라도 일단 건강검진 결과 과체중으로 진단되어진 현실을 보며 이후 다이어트에 돌입했다. 간식과 야식 일절 금지, 식사량 조절, 엘리베이터 안타고 계단 오르기와 같은 생활 속 운동을 몇개월 간 꾸준히 시행한 결과 체중 감량이라는 좋은 결과를 얻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좋았던 점은 체중이 줄어드니 몸이 그 혜택을 먼저 알더라는 것이다. 몸이 가벼워졌다는 그 홀가분하고 라이트한 느낌을 내 스스로가 느끼고 체험하며 동시에 튀어나온 배 때문에 잘 접히지도 않던 허리가 구부러졌던 모습을 회상하며 본서의 가르침을 피부 깊숙히 깨닫는다.

기도의 능력 속에 그분을 간절히 찾고 그분 앞에 엎드리는 삶도 마찬가지이다. 남부럽지 않게 모든 것을 가지고서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는 사람은 드물다. 왜냐하면 위에 열거한 소위 말하는 세상의 성공 기준을 퍼펙트하게 갖추었는데 뭐가 아쉬워서 보이지도 않는 하나님을 믿고 그분께 엎드리는 삶을 선택하겠는가?(오해는 마시라! 그렇다고 모두 무소유의 삶을 살라는 이야기가 아니니...) 기도의 능력을 갖기 원하는 신자의 모습은 자신을 세상의 잣대와 가치 기준에 맞추는 것이 아닌 오직 하나님의 기준과 요구에 합하는 삶을 선택하는 자발적 성별의 삶이 필요하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싶을 따름이다.

책장을 덮을즈음 10여년 전 어느 추운 겨울 날 살을 에는 듯한 칼바람을 맞으며 아내와 함께 강원도 태백에 있는 '예수원'을 방문한 기억이 떠오른다. 이곳은 인적 드문 산골짜기에 위치한 영적 쉼터와 같은 장소다. 예배실 한쪽 벽면 현판에 새겨진 글귀를 쳐다보며 한동안 멍하니 서 있었던 기억이 되살아난다. "기도는 노동이다"

20세기 개혁주의 목회권의 위대한 설교자였던 영국의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는 기도와 설교에 대해 질문하는 사람에게 이렇게 말했다. "설교는 언제나 쉽습니다. 하지만 기도는 언제나 어렵습니다!" "노동이 곧 기도요 기도가 곧 노동이다" 라고 여겼던 대천덕 신부의 예수원에서의 기억들과 더불어 20세기를 뒤흔든 최고의 영적 거인의 입에서도 기도는 언제나 어렵다는 고백이 흘러나온 것을 보면 역시 기도는 어려운 것 같다. 하지만 하늘 보좌를 흔드는 기도의 능력, 중보자의 특권인 중보기도에 관한 상세한 가르침 그리고 최고의 기도자요 기도의 모범을 보여주셨던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그 기도의 삶을 배우기 원하는가? 그렇다면 이 책은 제목 그대로 그리스도의 기도학교에 입학하는 모든 신자된 학생들에게 있어서 성경과 더불어 반드시 필요한 전공필수 과목의 주교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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