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19
막스 베버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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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철학]

 

막스 베버는 19세기 중반 독일의 사회학자이면서 정치경제학자로서 본서는 그가 지은 매우 잘 알려진 사회과학 영역의 탁월한 논문이다. 주로 노동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의 발달과 출현이 시장과 물질에 대한 사람들의 예민한 관심에 의한 것이 아님을 인지하고 종교, 그것도 프로테스탄트 개신교 윤리와 전통 가운데서 찾으며 고찰한 연구의 결과물이다.

재화의 생산과 유통이 소규모 가족 단위에서 이루어지며 자급자족 또는 가까운 이웃으로 한정되었던 근대 이전의 사회가 이제 대량생산 대량유통이라는 산업혁명의 눈부신 열매를 눈앞에서 목도하며 어느새 사회는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물품을 교환했던 때와는 판이하게 다른 새로운 시대로 접어들었으니 그것이 바로 막스 베버가 이야기하는 근대 자본주의 시대이다.

이제 재화의 유통 방법은 생산자와 그것을 요구하는 소비자가 전혀 일면식이 없는 상태의 비인격적 교류의 방식으로 변화되었고, 대량생산과 대량유통, 대량소비는 그만한 노동력을 요구하게 되었으며 그에 따라 생산자들이 그러한 많은 노동력을 필요로하게 됨에 따라 자연스럽게 사람들은 일자리를 찾아 물밀듯이 공장이 들어선 지역으로 몰려들게 된다. 그리고 그결과로 사람들이 모이는 근대 도시가 발달하게 된다. 이러한 와중에서 베버는 노동과 자본주의 정신의 발달과 근간을 물흐르듯이 흐르는 재화의 유통, 사람들의 물질적 욕구에서 찾으려고 한 것이 아니라 종교라는 독특한 영역과 관점에서 찾기 위해 노력했다.

전통적 경제윤리는 노동을 태초에 인간이 신으로부터 버림받고 받게 된 죄의 댓가로서 수고와 땀을 흘려야지만 그 땅의 소산물을 먹을 수 있게 된 일종의 저주로서 인식하며 가능하면 그 노동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 미덕임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자본주의 정신이 지배하는 곳에서 노동은 항상 신성한 것이었으며 그 노동을 통해 인간은 신을 향한 자신의 존재와 가치를 올바르게 증명해내고, 그 안에서 참된 평안과 만족, 안식을 얻을 수 있는 요소였다. 이것이 바로 베버가 찾으려고 했던 자본주의의 가장 중요한 정신적 근간이며 그는 이것을 종교, 특별히 개신교 프로테스탄트 윤리에서 찾으려고 노력한 것이다.

위에서 간략이 이야기했듯이 본서는 자본주의의 출현과 발달이 종교, 특별히 프로테스탄트 개신교의 백그라운드에 그 원천이 있음을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종교개혁 이전의 카톨릭과 종교개혁 1세대 루터교 그리고 지금 우리가 말하는 개신교의 실제적인 모습을 완성시킨 실질적인 종교개혁의 주인공이었던 2세대 종교개혁자 칼뱅, 그리고 감리교, 경건주의, 재세례파 등에서 나타나는 자본주의 정신을 배태시킨 정신적 근간을 심도있게 다룬다.  

 

 

많은 내용이 있지만 가장 핵심적인 주제 가운데 하나는 자본주의 정신의 출현은 돈을 많이 벌려는 인간적 탐욕이나 욕심에 기인한 것도 아니고, 카톨릭이나 루터교와 같이 결국에는 전통적 경제윤리의 한계성을 벗어나지 못한 교파와는 달리 칼뱅을 중심으로 한 16~17세기 청교도 프로테스탄트의 독특한 교리적 특징 가운데서 발현된다는 사실이다. 그 근간에는 '예정론' 이라는 칼뱅주의의 가장 중요하고도 심오한 교리가 전면에 등장한다. 하나님께서 창세전부터 어떠한 사람들은 영원한 구원에 이르도록 예정하셨고, 어떠한 사람들은 영벌에 처하도록 미리 예정하셨다는 칼뱅주의 예정론은 신자들로 하여금 그럼 우리가 어떻게 해야 구원을 받고, 나는 구원을 받도록 예정된 사람인지는 어떻게 확증할 수 있는가? 에 관한 근원적인 고뇌와 질문 앞에 맞닥뜨리게 만들었다.

그러면서 내가 구원을 받고 예정받았다는 사실은 하나님으로부터의 부르심 즉, 소명에 기인한 것이며 그 소명은 신자 각 사람이 자신의 거룩한 직업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에 따라 직업적 소명과 소임을 다함으로서 증명되어지고 확증되어진다고 여기게 되는 가운데 청교도 프로테스탄트 직업윤리가 탄생하게 된다. 각자의 직업은 하나님 앞에서 고결하고 성별된 것이며 우리가 행하는 모든 일들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소명에 응답하며 우리의 일을 통해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를 드러내고 그분께 영광을 돌리며 나아가서는 나의 직업과 일을 통해 네 이웃의 필요를 채워줌으로서 하나님의 가장 중요한 계명인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명령과 윤리를 제대로 순종하는 구원받은 자로서의 삶을 살아낼 수 있다.

대략적으로 본서에서 이야기하는 자본주의 정신은 구원의 확실성과 표지로서 성실한 직업윤리를 강조했고, 부의 축적을 하나님의 축복으로 여긴 프로테스탄트 청교도들의 생활양식을 통해 드러난다. 탐욕의 수단으로서 재화와 자본의 축적이 아닌 하나님의 대명령을 수행하는 성별된 자들의 성실한 삶으로서 직업을 이해했고, 이들의 이러한 흠없는 윤리와 태도는 세상 속에서 세상을 변화시키는 세속적 금욕주의로서 대변되었다. 이것은 그들 자신의 구원의 확실성의 표지로서 이 땅을 합리적이고 도덕적이며 아름답게 가꾸어 나가는 것이야말로 자신들을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의 소명에 부응하는 것이라는 의식을 통해 노동을 인류 원죄의 댓가로 여겼던 근대 이전의 전통주의적 경제윤리에 대해 명확하게 반박한다.

근대 자본주의 시대를 넘어 이제 신자본주의 시대에 접어들은 요즘의 독자들에게 어쩌면 1세기 전 자본주의 정신을 종교라는 믿기지 않는 영역에서 찾으려고 했던 막스 베버의 의식 자체는 놀라움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 급박하게 돌아가는 최첨단 문명, 거시경제 속에서 크게 비웃음을 살만한 베버의 주장은 어쩌면 정말로 고리타분하고 시대를 한참 벗어난 먼지가 풀풀나는 지하실 사과박스에서나 볼 수 있는 주장이다. 그러나 막스 베버의 이 책이 아직도 자본주의 정신에 관한 고전 중의 고전이고 세계 유수의 대학에서 그 머리 좋다고 하는 천재들에게 필독서로 추천되고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이 책은 집어들고 읽어야 할 충분한 당위성과 필요성을 갖는다. 왜냐하면 나와 내 가족이 먹고 살아가는 이 경제 시대를 공유하는 우리 모두가 바로 본서에서 베버가 말하는 경제 주체로서의 개체들이기 때문이다.

어디선가 일을 하고 장사를 하며 재화를 공급하고 소비하며 유통하는 이 일련의 모든 과정들 속에 면면히 흐르는 정신적 가치를 인식하고 인지하지 않는다면 인간은 한낱 하루벌어 하루먹고 살아가는 단지 돈을 헤아릴 줄 아는 경제적 동물에 불과할 것이다. 그렇기에 본서를 통해 베버는 자본주의 정신을 이야기하지만 결국 그것은 인간성의 바른 회복이라는 결론으로 귀결된다. 경제 주체로서 인간은 단지 먹고 싸는 동물이 아니다.

1원을 벌든 1억원을 벌든 경제주체로서 자본주의의 틀 안에서 자신의 정체성과 위치를 망각하지 않고 우리를 이 거대한 거시경제라는 큰 시계 속 작은 부속품과 같은 삶으로 전락하지 않도록 든든히 붙잡아 줄 수 있는 끈은 바로 이와 같은 자본주의 정신의 발생과 기원에 대한 깊이 있는 사고이며 고찰이다. 우리가 왜 땀흘려 일해야 하고, 무슨 이유로 재화를 유통하며 소비하는 지에 대해서까지 자잘한 사고의 무한확장을 해야하는 이유는 인간적 윤리와 도덕성은 말할 것도 없고, 기본적으로 갖추고 있어야 할 최소한의 인간적 예의도 깡그리 무시한채 탐욕으로 점철되어 쉽게 벌어 생각없이 써버리는 소위 갑질 졸부와 같은 짐승적 인간군상들에 대한 하나의 품위를 지키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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