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과치료를 받고 있다. 초등학교 때 신경치료를 받은 이 하나가 다시 탈이 나서, 조금 피곤하다 싶으면 치통이 전면에 등장한지 수 개월. 수많은 밤을 끙끙대며 버텼는데 (미련하기도 하지), 첫 발을 내딛고 나니 별거 아니네 싶다. 물론 치료 과정은 예상대로 무지 아픈데, 고통의 한 가운데에서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치료가 모두 끝나면 더 이상 아플 일이 없겠지' 하며 신이 났다.


오전에 치과에 앉아 순서를 기다리며 책을 읽고 있는데, 자그마한 키의 한 할머니가 들어오셨다. 미리 대기중이던 한 할아버지와 아는 사이신지 옆에 앉아 급하게 이야기를 쏟아 놓으셨다. 주된 내용은, 할머니가 요즘 소화가 잘 안되어 음식을 잘 못 드시며, 뭐랑 뭐랑 뭐가 먹고 싶은데 그걸 못 드셔서 아쉬우며, 어제는 아침 점심 저녁에 뭘 드셨고 그제는 뭘 드셨고 하는 것. 할아버지는 종종 흥얼흥얼 맞장구를 쳐주며 신문을 넘기셨고, 할머니는 아랑곳하지 않고 속사포처럼 음식을 묘사하시고, 나는 고요가 깨어진 것에 약간 불편해하며 억지로 책에 집중했다. 


간호사가 할아버지를 불러, 할아버지는 진료실로 들어가셨다. 일순 대기실은 이 곳이 원래 이렇게 조용한 곳이었나 싶을만큼 차분해졌다. 말벗을 잃은 할머니는 강제로 입을 닫으셨다. 나는 순간 고요를 되찾은 것이 무척 반가웠는데, 기쁨은 잠깐이고 이내 마음이 짠해왔다. 할머니의 앙 다문 입가에는 슬픈 주름이 가득했고, 혹시 이야기 나눌 누구 또 없나 주변을 살금살금 두리번거리는 몸짓은 외로웠다. 옆에 가서 말을 걸어드릴까 잠깐 생각했지만 나는 그런 종류의 사회성은 꽝이라 주저주저하다가 진료실로 불려 들어갔다. 


마침 읽던 책에서 김연수 작가는 청춘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청춘의 절정을 한참 전에 지난 할머니를, 청춘인 나는 불편해하다가 짠해했다. 이 다음에 내가 그렇게 외로운 순간이 되면, 청춘인 누군가는 나를 불편해하지도, 짠해하지도 말았으면 하는 생각도 했다. 

















진료대에 누웠더니, 마취 주사의 얼얼함을 불평하기도 전에 드릴이 어금니를 파고 들어온다. 다음 차례라 옆 진료대에 따라 들어와 누운 할머니는 누구 하나 묻는 사람 없어도 한 주동안 이가 얼마나 불편하셨는지 공기 중에 내뱉는다. 아픔을 잊기 위해 평소처럼 숫자를 세는 대신, 할머니의 이야기에 가만히 귀를 대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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