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라쉬 브런치 - 번역하는 여자 윤미나의 동유럽 독서여행기
윤미나 지음 / 북노마드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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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몇 장을 읽으면서, 화려한 단어들에 체할 것 같아 내심 실망했는데,

점점 읽을수록 작가의 시선과 유머와 이야기에 빠져들어 속이 시원해졌다.


개인적인 취향에 꼭 맞는 글이라고 말할 수는 없겠으나, 읽으면서 몇 번이고 진심으로 웃고, 생각하고, 추억을 더듬었으니

나는 작가님께 큰 빚을 졌다.





따로 적어두고픈 구절이 몇 군데 있었는데, 그 중에서 한 부분..


새우는 껍질 벗기는 과정이 귀찮고 조개는 썩지 않는 쓰레기가 많이 나와서 번거롭지만, 녀석들은 비교적 살생의 죄책감을 덜 느끼게 하는 얼굴을 하고 있다. 팔팔 끓는 물에 집어넣어도 갑옷을 입고 있으니 좀 덜 뜨거울 것 아니냐는 말이다. 제라드 드 네르발처럼 갑각류를 애완동물로 삼았던 사람이 이런 말을 들으면 나를 인간 취급도 안 할 것이다. 그러나 포기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의 합리화가 불가피하다고 본다. 원래 난 그런 인간이다. 19세기 중반을 살다 간 이 프랑스 작가는 애완동물에 대한 세간의 통념에 반기를 들고 파란 리본에 가재를 묶어 뤽상부르 공원을 돌아다녔다고 한다. "왜 개는 괜찮은데, 가재는 우스꽝스러운가? 또 다른 짐승을 골라 산책을 시킨다 한들 무슨 상관인가? 나는 가재를 좋아한다. 가재는 평화롭고 진지한 동물이다. 가재는 바다의 비밀을 알고 짖지 않고 개처럼 사람의 단자적 사생활을 갉아먹지 않는다. 괴테는 개를 싫어했지만 그렇다고 괴테가 미쳤던 것은 아니지 않은가." 물론 괴테는 미치지 않았다. 그리고 네르발 당신도 미치지 않았다. 오직 가재만이 미치도록 피곤했을 것이다. 


(굴라쉬 브런치, 126-127)



파란 리본을 단 채 미치도록 피곤한 가재라니...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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