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계약론
장 자크 루소 지음, 정영하 옮김 / 산수야 / 2005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인간은 자유인으로 태어났으나 어디에서나 쇠사슬에 얽매여 있다. 자신을 다른 사람들의 고용주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고용인들보다 더 심한 노예상태에 있다. 어떻게 이런 뒤바뀜이 생겨났는지 알 수 없으나, 그것이 당연한 것으로 보여질 수밖에 없는지에 대해서는 대답할 수 있다.
  폭력과 폭력의 결과만을 생각한다면 나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어떤 국민이 복종을 강요받아 복종하는 한, 그 국민은 잘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자마자 바로 그 속박을 떨쳐 버린다면 그들은 더욱더 잘 하는 것이다.

                                                              「총론」

 

  내가 숲 모퉁이에서 강도에게 강탈당했다면 폭력은 내가 나의 지갑을 강제로 넘겨주게 한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내가 나의 지갑을 그에게 주지 않을 수 있다면 그 때에도 나는 정당하게 그 돈지갑을 내놓을 의무가 있을까? 결국 강도가 든 권총은 하나의 권력이다.

  그러므로 분명히 폭력이 권력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는 것과 사람은 오직 정당한 권력에만 복종할 의무가 있다는 것은 인정되어야 한다.

                                                                  「강자의 권리」

 

  우리는 항상 우리에게 이익이 되는 것을 바란다. 그러나 우리는 무엇이 우리에게 이익 되는가를 항상 분간하지 못한다. 국민은 결코 매수되지 않는다. 그러나 국민은 가끔 속는다. 그런 때만은 국민은 해로운 것을 원하고 있는 것 같다.

                            「전체 의사는 언제나 공명정대한가」

 

  내가 목표를 향해 걸어갈 때, 첫째로 내가 그 쪽으로 가기를 결정해야 하고, 둘째로는 내 발이 나를 그곳으로 옮겨가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정부 일반에 관하여」

 

  역사상 찬양을 받은 위대한 국왕들은 지배하기 위한 교육을 받지 않았다. 통치 기술은 많이 배운다고 하여 얻어지는 지식이 아니라 명령을 내리기보다는 복종을 함으로써 더 잘 얻어지는 것이다.

  '선과 악을 구별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다른 국왕 치하에서라면 당신이 무엇을 원했고 무엇을 꺼렸을까를 생각해 보는 것이다.'

                                                      「군주정치」

 

  장 자크 루소, 『사회계약론』中

 

 

+) 루소는 제1부에서 계약의 본질에 관한 일반적 고찰을 펼친다. 모든 전체주의는 불법적인 것이다. 왜냐하면 힘은 어떠한 정당한 권리도 만들어 낼 수 없기 때문이다. 진정한 정부의 기초는 계약에 있다. 즉 각 개인으로 하여금 공동체를 위해 자신의 모든 자연적 권리를 포기하게 하고, 공동체는 그 대신 개인의 생명과 재산을 보장하게 하는 계약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평등이 보존되고, 자유도 또한 보장된다. 그래서 사회계약으로써 인간은 자연적 신분에서 시민의 신분으로 옮아간다.

 

제2부에서는 주권과 법의 문제가 거론된다. 주권은 전체 의사의 행사로서 양도될 수도 없고 분할될 수도 없다. 어떤 개별적 이익의 연합도 이를 해쳐서는 안 된다. 정치체의 보존은 법에 의해 보장되어 있으며, 법은 집단 생활의 문제에 대한 전체 의사의 적용을 명한다. 법은 만인에게 평등한 것이지만, 법의 제정은 지역과 시대와 모든 특수한 조건에 따라 변한다.

 

제3부는 정부 및 정부의 여러 형태에 관한 고찰을 담고 있다. 법을 집행하기 위해서는 한 기구가 필요한데 이것이 곧 정부이다. 민주정치는 전 국민 또는 절대다수의 정부를 가리키고, 귀족정치는 소수의 정부, 그리고 군주정치는 한 사람의 통치를 가리킨다. 민주정치는 '이상적인 것이지만 탐낼 만한 것'은 아니다. 선거에 입각한 귀족정치는 '최선의 그리고 가장 자연스러운 체제'이다. 한 정부가 타락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위임받은 권한이 의회에 의해 주기적으로 통제 받아야 하고, 또 경신되어야 한다.

 

제4부는 특수한 정치체제에 대한 고찰로 특히 로마 정치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첫장에서 전체 의사의 문제를 다룬 다음, 로마 정치사를 통해 호민관제, 독재집정관제, 통제관제, 끝으로 시민 종교를 논한다. 루소는 전체의사는 때때로 잘못 인식된다 할지라도 결코 파괴될 수 없고 항상 절대 다수에 의해 결정되어야 한다는 원리를 주장한다. 로마의 독재집정관제를 예로 제시하면서 국가의 보존을 위해서, 그리고 전체 또는 다수의 이익을 위해서는 때때로 제한된 독재체제가 불가피하다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한다.

 

루소는, 사람들이 생존하기 위해 모였으며, 이때 각 구성원은 이전에 가지고 있었던 권리를 공동체 전체에 전면적으로 양도하여 신체와 재산을 지킬 수 있는 <사회계약>을 맺으라고 기술하고 있다. 그리고 기존의 모든 특권을 포기하고 대등한 입장에서 사람들이 설립한 <공동의 힘> 즉 새로운 정치체를 일반의지라는 최고의지(주권)의 지도하에 두라고 했던 것이다.

루소는 주권이란 불양도(不讓渡)·불분할(不分轄)이며 대행될 수 없다고 했는데 이것은 주권, 즉 일반의지는 각 개인이 계약을 맺어 힘을 집결한 정치체의 최고의지이므로 당연한 결론이라 할 수 있다. 주권은 외국세력이나 특수이익을 추구하는 한 당파에 양도하거나, 국왕이나 신분제의회에 분할할 수 없으며, 또 전 인민의 의사를 대표하고 있지 않은 의회(영국)에 의해 대행될 수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이 각 시민은 정치체와 일반의지를 형성하는 주체이므로 루소의 사회계약론은 인민주권론과 법의 지배라는 민주주의의 2대원리를 주장한 것이라 할 수 있으며, 이로 인해 그의 사상은 프랑스혁명과 각국 민주주의의 성전(聖典)이 되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스무 살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00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그건 저도 압니다. 제가 사려는 선풍기는 대개 아무도 팔겠다고 말하지 않는 선풍기죠. 파는 사람이 없더라도 저는 사려고 합니다. 말하자면 저는 그냥 외로운 구입을 하겠다는 얘기입니다."                                                     「공야장 도서관 음모 사건

 

그가 댄 핑계의 목록을 만들어 살펴봤다. 선약이 있어서 내지는 몸이 피곤해서나 지금 나가고 없는데요 같은 것들. 사람을 가장 피곤하게 만드는 것은 지금 나가고 없는데요라고 자기가 거짓말을 할때다. 자신이 자신의 부재를 알린다는 것. 재미없는 일이다.

                                                        「마지막 롤러코스터


어떻게 보면 사진은 가장 현실적인 예술이다. 항상 흐르는 시간의 가장 마지막 순간을 찍을 뿐이며 사진기가 놓인 그 공간에서 단 한발짝도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진 속의 시간과 공간은 결코 혼재할 수 없다. 사진의 매력은 바로 거기에 있었다. 시간과 공간이 대체할 수 없는 단 한 번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보여진다.

                                                       「뒈져버린 도플갱어

 

열심히 무슨 일을 하든, 아무 일도 하지 않든 스무 살은 곧 지나간다. 스무 살의 하늘과 스무 살의 바람과 스무 살의 눈빛은 우리를 세월 속으로 밀어넣고 저희들끼리만 저만치 등뒤에 남게 되는 것이다. 남몰래 흘리는 눈물보다도 더 빨리 우리의 기억 속에서 마르는 스무 살이 지나가고 나면, 스물한 살이 오는 것이 아니라 스무 살 이후가 온다.

                                                                         「스무 살

 

 

김연수,『스무 살』

 

 

+) "흐르는 시간의 가장 마지막 순간"을 잡아내는 것이 사진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있던가. 솔직히 사진은 순간을 영원으로 만드는 작업이라고 생각했었다. 그 순간이 전부라고 생각했던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저 짧은 한 문장을 통해서, 그 '순간'도 처음과 마지막이 있음을 알았다.

 

독서를 하면서 버리지 못한 습관 중의 하나가, 도서관을 거닐다 우연히 제목이 끌리면 책을 집어드는 습관이다. 그날도 책 몇권을 뒤적거리다 제목이 마음에 들어서 이 책을 들고왔다. 이 습관의 장점은 우연치않게 값진 작가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이고, 단점은 꼭 책을 다 읽는 버릇때문에 고역을 치를 때가 있다는 것이다. 솔직히 이 책은 그닥 재미있는 소설은 아니었다. 고역까지는 아니래도 지루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의 시선은 '현실과 그 너머', '글과 글 사이'에 위치한다. 무엇보다 다양한 독서와 그림에 대한 관심이 묻어나는 글편들을 발견할 수 있다. 단편들을 쓰면서 소제목을 적어가며 소설을 전개하는 그의 글쓰기 방식이,글을 이끄는 힘을 약화시키는 것은 아닐까 싶기도 했다. 하지만 곧 그가 정리하는데 익숙한 사람이 아닐까 하는 짐작을 가졌다.

 

그러한 점은 내용에서도 묻어난다. 그는 삶에서 시간과 공간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나는 시간과 죽음의 문제를 교묘히 엮고 있는 그의 글을 보면서, 과연 그가 그 가운데 서 있는 자신을 어떻게 바라볼지 궁금해졌다. 그의 글쓰기 방식처럼 시간과 죽음의 문제를 정리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라나, 포르노 만화의 여주인공 세계사 시인선 65
박상순 지음 / 세계사 / 1996년 5월
평점 :
품절


지난밤 한 남자가 말했다

 

 

지난밤, 한 남자가 말했습니다ㅡ이제 눈물이 나올 것 같아.

 

지난밤, 술 취한 배들이 하늘을 날고, 술 취한 구름이 하늘을 덮고, 풀들의 뿌리는 어둠의 깊이를 미처 알지 못한 채 땅을 향해 거꾸로 솟아올랐습니다.

 

지난밤, 한 남자가 말했습니다ㅡ이제 하늘이 터질 것 같아. 큰 가방을 마련해, 큰 가방. 내 눈물을 거두고, 술 취한 배들, 술 취한 구름, 거꾸로 솟아오른 풀들의 뿌리를 거두어야 해.

 

지난밤, 한 남자의 머리 위헤서 하늘이 터져버렸습니다ㅡ술 취한 배들, 술 취한 구름, 거꾸로 선 풀들의 뿌리, 가방집의 가방들도 모조리 터져버렸습니다

 

지난밤, 한 남자가 있었습니다. 터진 하늘과 긴 강물이 그의 곁에 숨죽여 앉아 있었습니다.

 

지난밤, 한 남자가 가방집 지붕 위에 앉아 있었습니다ㅡ꿈 속의 내 가방은 작은 뿌리, 내 가방은 취한 배, 내 가방은 술 취한 구름, 내 가방은 기나긴 강물, 그리고 내 가방은 거대한 눈물.

 

  만져 봐, 만져 봐.

 

지난밤, 한 남자가 세계의 끝에서 말했습니다. 만져 봐. 터진 하늘 아래 피는 봄, 터진 가방 아래 흐르는 거대한 강물, 꽃봄처럼 터져나온 내 심장이 너의 손을 잡는 꿈.

 

박상순, 『마라나, 포르노 만화의 여주인공』中

 

 

+) 박상순의 시를 읽을 때는 보이는 것보다, 보이는 것 이상을 상상하는 것이 편하다. 이때 주의해야 할 점은 꼭 보이는 것만큼만 상상해야 한다는 점이다. 자칫 지나치게 부풀려서 상상할 경우, 그의 의도와는 다른 전혀 엉뚱한 곳을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있었다", "말했다", "갔다", "않았다" 등 이 시집에 쓰이고 있는 과거형의 어투는 '과거'라는 시간과, '경험'이라는 주체의 행동이 결합되어 강조된다. 게다가 그것은 과거에서 단절되지 않고 계속 현재로 이어지고 있다.("나는 / 언덕 아래로 끝없이 // 굴러가고 있었다"[불 꺼진 창]) 이는 경험한 것들이 현재에 반사되어 그 잔향이 지속되고 있음을 나타낸다.   

 

그가 사용하고 있는 시어들은 지극히 개인적인 상징을 내포한다. 앞서 언급한 경험의 잔향이 그 개인적인 상징성을 뒷받침한다고 볼 수있다. 그것이 기호를 시어로 선택한 시의 근거가 되는 것이 아닐까. 기호에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저 시인이 그 순간 가장 편리한 것으로 선택한 것 뿐이다.([도넛을 만드는 A, ,B, C])

 

이 시집에서 '나'는 마치 청년의 한 사람으로 느껴진다. 방황의 길 위에서 내성적인 자아의 독백처럼 들리는 시편이 보이며,("네가 네 청춘을 밟고 오는 소리가 들리는구나.[너 혼자]) 그 길 위의 동반자적 존재와의 관계에 고민하는 시편도 보인다.("마라나;없음 / 나;없음 // 꽃길;없음 / 나;없음"[마라나;포르노 만화의 여주인공4])

 

그의 시는 불투명성을 갖고 있다. 내면을 보여주지 않고 표면상 언어로 주제를 짐작하게 하는데, 어쩌면 이게 그의 시적 매력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불투명성이 그의 시를 난해한 것으로 만들수도 있다. 난해하지 않기 위해서 그는 불투명함의 끝에 거울을 만드는 재주가 필요할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설탕은 모든 것을 치료할 수 있다 랜덤 시선 8
최치언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5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연못

 

 

연못에는 내가 들어가지 못한 숲이 있다

물푸레나무의 젖은 머릿결 속으로 은빛 잉어 한 마리 길을 간다

하늘과 새와 이름 모를 꽃들이 툭 툭 잉어의 지느러미에 깨어난다

비로소 세계가 몸을 튼다 틀어진 길의 끝에서

바람이 분다 숲이 숲으로 겹쳐진다

수면의 주름이 연못의 시간을 밀고 내 발끝까지 찰랑댄다

감당할 수 없는 주름의 시간이여 나에게도 삶은

이렇게 밀려왔었다, 밀려간다

온몸으로 우는 것은 누군가 내 속에 길을 가고 있기 때문이다

풍금처럼 가볍게 밟아도 일어서고 쓰러지는 것은

또렷하게 아픈 것이다 연못엔

내가 들어가지 못한 숲이 있다 그곳엔 은빛 잉어 한 마리

푸르고 깊은 상처를 내며 길을 간다

비로소 세상이 몸을 튼다

언젠가 숲에 들지 못한 날들이 단단한 돌멩이 되어

연못 속으로 던져진다

간절한 것들이 그리운 것들로 되기까지

나는 연못 위를 서성였다

 

최치언, 『설탕은 모든 것을 치료할 수 있다』中

 

+) 그의 시집 처음 몇 편을 읽고서 한 30대 후반쯤, 인생의 굴곡을 겪고 있는 남자일꺼라 생각했다. 그건 "미상 밟는 아내"와 "올림푸스 세탁소"를 운영하는 "주인장"을 발견하는 시선때문이었다. 아주 단순하게도 나는 그의 시선을 따라가면서, 그가 보는 것을 같이 바라보며 그를 찾아내려고 애썼다.

 

머리말에서 그가 언급한대로 "생을 뜨겁게 달구는 불"은 그의 시 곳곳에서 묻어난다. 그 '생'을 선택한 것도 시인의 마음이겠지만, 생에 잠재된 '불'을 선택한 것도 시인의 판단이다. "여자", "남자", "노인", "아이(유아)", "그", "나," "당신" 등이 바로 그가 선택한 생의 주인공들이다. 특정한 사람을 가리키는 것 같지만, 그의 시에는 특별한 사람보다 일반적인 사람이 대부분이다.

 

그가 고민했을 "불" 또한 마찬가지다. 특별한 것 같지만 사실 일반화시켜서 드러내고 있을 뿐이다. "말","비명소리", "새", "시선", "꽃" 등으로 시인은 사람들의 삶을 조명한다. 그것들은 인생의 어떤 해결책이나 고민 혹은 고통의 장면이라기 보다, 인생을 그대로 드러내는 매개체다. 물론 "새"를 통해 자유를 갈망하는 화자의 욕망을 묘사하고, 타인과의 소통을 희구하는 "시선"을 형상화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시인이 연결하는 '생'과 그 생을 뜨겁게 달구는 '불'이다. 중요한 것은 시인이 감정을 절제하며 바라보는 그 '생'에 대한 안타까움과 분노가 풍자와 비판을 담고 있다는 점이다. "아이"와 "노인"을 좇고 있는 그의 시선이 멈추지 않고 치밀하게 그들을 지켜보고 있다는 것에서 사람에 대한 애정을 포착할 수 있다.

 

최치언은 언어유희를 즐기는 편인데 ("나는 불 안에서 불안에 떨고 있었지"[화장터]) 시를 읽을수록 감질맛난다. 그 언어유희가 시에서 한 문장으로서 혹은 시어와 시어를 복잡하게 이어주고 있는데, 그것은 생의 면모를 그려내는 것 같다.([도망가라 메기야])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twinpix 2007-07-10 1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시집 읽었었는데, 이 리뷰를 읽으니 다시 읽어봐야겠네요.^^

우비소녀 2007-07-10 15:34   좋아요 0 | URL
^^ 그런가요? 그런데 아마 저도 시간이 지나서 다시 보면 또 새롭게 보일 것 같아요. 시란 그런게 멋지잖아요 ㅋ
 
이 달콤한 감각 문학과지성 시인선 282
배용제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4년 1월
평점 :
절판


오래된 사진관

 

 

세상에 잘못 인화된 장면이 나뿐이겠는가

버려진 사진처럼 바람에 떠돌다 내려진

소읍의 정류장 골목에

내 나이만큼 오래된 사진관이 걸려 있다

내부로 들어서자 창에 반사된 흑백사진 속에서

주인인 듯한 노인이 돌아본다

느릿느릿 사진첩을 펼치며 어색한 복고풍의 미소를 짓는다

플래시를 터뜨리던 나날들,

초점을 맞추지 못해 망쳐버린 때도 많았지만

세울은 절망할 여유도 없이 섬광처럼 빠르게 지나가 버렸다

빛바랜 시간들이 버려지는 세월 속,

밤은 몇 개의 풍경을 보관하고 있는지

날마다 똑같은 태양만 떠올랐다

누추한 기억의 암실,

벌써 이생의 장면을 다 진열해버린 노인은

얼마나 빛나는 날들을 안고 後生(후생)으로 건너갈 것인가

또 내 전생은 얼마나 우스꽝스런 순간들을 인화하고 있는가

너무 많은 무덤을 짓는 지구의 평면 위,

젊은 그가 늙은 얼굴을 향해 웃음을 짓는

사진첩을 넘기며 나는

내게 남아 있는 장면을 뒤적거린다

이빨을 드러낸 광기의 포즈가

아직은 내 일생의 렌즈를 통해 발광하고 있다

더 이상 방문할 풍경이 없는 노인은

두꺼운 돋보기안경 너머

초점이 맞춰지지 않는 창밖을 힐끗거린다

희미하게 인화된 추억만 노인의 남은 액자에 끼워진다

세상의 저녁이 창에 걸린다

 

 

배용제, 『이 달콤한 감각』中

 

 

+) 시인은 말하는 "나와 관계된 것들"은 "나와 영혼 사이에 낀 모든 이야기"이며 "결국 나와 너 사이"에 존재하는 것들이다. 그것은 "우주의 풍경과 환각과 있음과 없음" 사이에서 "먼 너에게 이르는 그때까지" 접하게 되는 모든 것들이다.([시인의 말])

 

시인은 공감각적 이미지와 상징들을 접목하여 생의 무게를 관찰하고 있다. 그것이 사회적 상처이든, 개인적 시련이든 시인에게 있어서는 생성과 소멸의 궁극적 원인이 된다. 다시 생성하여 무거워진 생이 아니라, 애초부터 고정되어있던 무게감이 화자의 의식을 통해서 체화된 것이다. "어떤 땐 고통이나 불행조차 성급하게 집어삼"키며, "굶주린 무게를 흡수"한 화자는 "수십 년 부풀어왔던 거대한 살점의 무게가 순한 / 바탕이 되어" 자신을 비롯한 생의 무게를 떠받치고 있는 것이다.([그녀를 보기만 해도 알 수 있는 것])

 

온몸으로 느끼는 그 무게감을 털어내고자 그는 비워냄(空)의 진리를 기웃거린다. 하지만 "우주에서 사라지는 것은 없다, 고 믿는 / 보편적인 사람들의 종교를 나는 믿는다"며 "사라진 것이 아니"라 "환생의 사원에" 들어선 것이라 생각한다.([노을]) 그것은 소멸에 대한 부정이다. 다시 말해서 그가 '너'를 만나러 가는 사이, 그를 둘러싼 것들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기화(氣化)하는 것이다.

 

"쏟아지면 금세 증발해버리고 / 사소한 흔적도 남지 않는 울음,"을 "발효시킨 일생의 용도"([발효된 울음에 대하여])는 시인에게 "가장 편하고 고요한 무게가 된다."([물끄러미]) 그것은 이 시집에 종종 등장하는 "한 방울", "줄줄 쏟아진다", "흘러 다니다", "울음" 등의 액체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는데, 울음으로 상징되는 고통이 현실에 고착되는 것이 아니라 기화되고 있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시인은 '검은' 색감(어둠, 검은 빛, 검게 그을린, 검은 잿더미 등등)에 집착하는데 그것은 화자의 불안한 심리를 도출한다. "세상의 역사와는 너무도 무관하게" 살고 있는 화자, 그는 블랙홀에 빠져들어도, 응급실에 실려가도, 꼭대기에서 추락해도, 한줄기 '별빛'이 그에게 있다. 미래에 대한 의지이며, 삶에 대한 연민이고, 꿈에 대한 희망이기도 한 그 빛은 결국 "제 몫의 생애를 완벽하게 재생하는 일"을 한다. 그리고 세상과의 거리를 좁혀 어둠 속에서 끊임없이 또 다른 나를 복사해낸다.([저 별빛])

 

이처럼 기화의 법칙은 그로 하여금 생의 가벼움과 무거움 사이를 환생 혹은 윤회, 그러니까 결코 끝나지 않는 순환으로 만든다. 따라서 시인에게 '죽음'은 암울하고 슬픈 것만으로 나타나진 않는다. 죽음은 의식이 잠시 멈춘 상태이다. '잠', '꿈' 처럼 화자가 잠시 의식을 놓고, 무의식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상태와 같은 것이다. 그 무의식의 세계에서 그는 쾌락과 고통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시인이 제시한 많은 죽음의 상징은 "무수한 죽음을 안고 사는", "더 많은 죽음들이 들어찰수록 오래 사는", "완전한" 점치는 여자에게서 극대화된다.([점치는 여자 1]) 꿈 속에 애욕과 부패와 꿈과 희망이 한꺼번에 흘러 다니듯, 얽히고 설킨 관계의 혼란 속에서도 점치는 여자는 "온 힘을 다해 몸을 흔들"며 생의 "무게를 털어낸다." "태양이 끝없이 돌려대는 원형의 바퀴에 매달린 채 / 여러 생을 오락가락하며 정신을 놓는다." ([점치는 여자 4]) 즉, 죽음은 여러 목숨이자 꿈이고, 애욕이며 부패고, 쾌락이며 고통이다. 원형의 바퀴처럼 순환의 운명을 타고난 것이다.

 

시인의 "달콤한 감각"은 나와 너 사이, 죽음을 향한 길 위에서, 흘러가다 증발해버리고 다시 태어나는, 감각의 기화로 형상화된다. 순환의 운명을 받아들이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