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계자들
김언수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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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면 부끄럽고 두려운 삶을 살 것이다.  그래도 책을 읽을 생각이냐?"

p.38

 

"사전이란 참 좋은 것이지. 감상적이지도 않고 징징거리지도 않고 교훈적이지도 않고 무엇보다 저자들의 그 역겨운 잘난 척을 안 봐도 되니까."

p.61

 

"책이라는 것은 언제나 자신의 고유한 운명을 따라가는 거지."

p.119

 

하지만 평범함이라는 것은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지. 왜냐하면 애당초 평균적인 삶이란 게 없기 때문이야. 못났건 잘났건 사람들에겐 모두 자기만의 독특한 삶의 모양이 있는 거지. 그러나 평범하게 사랑하고, 평범하게 친절히 굴고, 평범하게 사람을 만나고 헤어지는 것은 아주 난해한 일이야. 게다가 그런 삶에는 사랑도, 증오도, 배반도, 상처도 그리고 추억도 없지. 무미건조하고 무색무취하지. 하지만 나는 그런 삶이 좋아. 나는 너무 무거운 것들은 못 견디거든. 그래서 나는 사람들이 나를 기억하지 못하게 하는 방법을 배우고 있는 중이야.

p.224

 

 

김언수, <설계자들> 中

 

 

+) 이 책은 한 편의 영화처럼 만들어진 작품이다. 돈을 받고 누군가의 죽음을 의뢰받아 이를 깔끔하게 처리하는 구성을 설계하는 '설계자',  이 설계자들로부터 돈을 받고 처리하는 '암살자'의 이야기이다. 그리고 그들에 의해 현생에서 사라지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추리 소설 같기도 하고, 영화 같기도 해서 읽는 내내 흥미로웠다.

 

하지만 결코 서사에 치우치는 작품은 아니다. 그만큼 인생을 꿰뚤어보는 문장들이 많다는 말이다. 단순히 흥미 위주의 작품이 아니라 곱씹어 볼 만한 문장들이 많다. 그건 굵은 서사 줄기에 작가가 켜켜이 얹어놓은 삶에 대한 고민들이 아닐까 싶다. 소설가 김언수의 문장은 군더더기가 없어서 좋다. 꾸밈없이 핵심을 잘 살려서 적어내려가는 그의 문장들을 보면서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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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탁 씨의 특별한 월요일
페터 슈미트 지음, 안소현 옮김 / 문학동네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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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치 않은 기분이 들었을 때 그것을  떨쳐버릴 수 있느냐 없느냐는 결국 정신이 자신의 상념에 대해 어느 정도의 지배력을 지니는가 하는, 힘의 문제가 아니겠는가.

p.16

 

이해한다는 것은 공감하면서 동시에 체험하는 거지. 예를 들자면 '창 밖에는 비가 온다' 라는 문장을 읽고 실제로 비가 오는지 창 밖을 내다보는 것과 같은 거라고 할까.

p.52

 

"네게 상처를 주는 사람을 대할 때는 네가 지불하지 않은 고지서를 가져다주는 심부름꾼이라고 생각하렴." 몬탁은 말했다. "그러면 그를 미워하거나 그에게 화를 내느라고 시간을 낭비하는 일은 없을 테니까. 그 고지서는 이제까지 네가 늘 똑같은 기만에 빠져 있었다는 증서야. "

p.103

 

고통을 멈추게 하려면, 사유가 영혼의 바닥에 숨어 있는 어떤 가능성을 닮아가게끔 유도하라. 두려움이 생길 때에는 생각하려 하기보다는 그것을 있는 그대로 느끼고 현실로 지각하라. 두려움이란 망상에 불과하지만, 종종 변장을  하고 나타나서 우리를 기만하곤 한다.

p.172

 

 

페터 슈미트, <몬탁 씨의 특별한 월요일> 中

 

 

+) 이 책은 독일의 성장 문학으로 열 여섯 살의 소년이 박물관 관리인 몬탁씨를 만나게 되면서 자신을 들여다보는 법을 배우게 되는 작품이다. 몬탁씨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불교적 사유와 맞닿아 있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되기도 한다. 그러나 철학적 사유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기에 조금은 지루한 작품이기도 하다. 하지만 천천히 몬탁씨의 생각을 곱씹어 이해하려고 노력한다면 얻게 되는 깨달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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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젊은 수필
김귀숙 외 지음 / 문학나무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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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뒤는 앞만 못하다. 앞은 밝고 전진적이며 긍정적이다. 그에 반해 뒤는 정지한 듯 습하다. 때로는 사람의 마음을 턱없이 깊게 하기도 한다. 누군가의 등을 바라보고 섰을 때의 수많은 생각들은 그 사람의 빛나는 눈을 보는 순간 안개 걷히듯 사라진다.

p.83   김은주, '등'

 

업는다는 것은 한 생명체의 무게를 고스란히 내가 감당하겠다는 의미이며, 한 사람의 걸음으로 둘이 나아가겠다는 뜻이다.

p.278  정성화, '동생을 업고'

 

세월은 두루마리다. 새 달력을 받아들고 얼핏 스친 생각이다. 아니다. 세월은 네모다. 도르르 말려 있던 달력을 펼치니 세월은 금방 네모로 변해버린다. 그 안에 들어 있는 수많은 시간까지 내 손안에 쥔 것처럼 뒤집어 말아 휘적휘적 흔들어 본다.

p.311   정해경, '달력의 동그라미'

 

김귀숙 외, <젊은 수필> 中

 

 

+) 이 책은 등단 5년차를 기준으로 선발된 젊은 작가와 중진들의 글을 중심으로 수록되었다. 작가들의 나이가 기준이 아니라, 등단을 기준으로 젊은 수필가들의 글을 모아놓았다. 나는 이 책을 몇 달 전부터 마음 내킬때마다 천천히 읽었는데. 수필의 참맛이 느껴지는 글들도 많은 반면, 수필이라는 특성에 끼워 맞춰 놓은 글들도 제법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몇의 글에는 시나 소설에서 맛볼 수 있는 감동이 느껴졌는데. 발상 자체가 독창적일수록 시로 썼으면 하는 바람이 보태어지고, 체험한 이야기가 맛깔스러울 때마다 좀 더 늘여서 소설로도 써보았으면 싶었다. 물론 수필 자체로도 무척 훌륭했지만, 그런 장르의 이동도 연상해볼만큼 좋은 글이었기 때문이다.

 

수필은 솔직한 글쓰기이다. 또한 깨달음과 감동을 짧은 순간에 선사한다. 나는 수필의 경건함과 진실함, 그리고 감동을 인정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수필이 현재 문학에서 차지하고 있는 지위보다 더 가치있는 글이 많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수필이 본격적인 문학의 장르로 인정받기를 바라면서, 이 책을 읽었다. 수필이 무엇인가 느껴보고 싶었다면, 혹은 요즘 수필의 경향에 대해 배워보고 싶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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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언어반전 EBS 최종 공략집 + 쪽집게 모의고사 3회 - 2011
이투스 국어팀 지음 / 이투스북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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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공략집은 지문 분석 방법과 평가원 문제를 바탕으로 수능 문제 유형을 예측하는데 도움을 준다. 3회 분량의 모의고사는 EBS 지문을 활용하여 구성되었기에 실전에 도움이 되리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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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속까지 잎사귀가 피어 있다 창비시선 216
박형준 지음 / 창비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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城에서 1

 

새집은 나무의 숨통이다.

겨울강 밑에 떠다니는 물고기들이

뚫어놓은 구멍들, 묘지의 구멍들,

다 영혼이 숨을 잘 쉬기 위해 그런 것이다.

 

성에서, 허물어진 土城의 끝을 걷다가

두 발을 탁탁 부딪힌다.

내게도 날개가 있었던가, 하는 생각이 잠시 인생을 상냥한 것으로 만든다.

하지만 날아본 기억이 없는 곳에서 길이 끝나고,

나는 산이 부화시키고 있는 알,

숨겨진 무덤들과

그 밑으로 펼쳐진 조그만 강을 아득하게 바라본다.

그리고 나무에 기대어

하늘로 뻗어 올라가는 길을 더듬는다.

 

밤이 되면 성은 기다란 몸을 추슬러

푸른 빛을 섞은 뱀이 되어

나무 위로 올라간다.

 

 

박형준, <물속까지 잎사귀가 피어있다> 中

 

 

+) 소멸의 기억과 그 괴로움을 노래했던 전작에 비해 이번 시집은 혼자 살아가는 쓸쓸함을 노래한다. 고독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무겁고, 외로움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깊고, 혼자만의 삶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가벼운 듯한 느낌이다. 혼자 사는 아들의 방을 오고 가는 어머니의 흔적과, 그 흔적을 따라 천천히 어머니를 그려보는 아들의 모습에서 시인만의 애틋함이 느껴진다.

 

박형준의 이번 시집에서 모든 자연물은 詩作의 시작점이 된다. 가만히 응시하고 서서 사유의 힘을 당긴다. 때로는 과거로 돌아가고, 때로는 미래를 상상하며, 또 때로는 현재를 돌아보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그가 바라보는 자연은 그의 시 창작의 근원이라는 것이다. 어쩌면 자신의 사유의 기본으로 자연을 끌어들인 것일수도 있다.

 

"자기야 저건 상처다 반쯤 뜬 자기의 눈이다 / 자기 눈꼬리에 매달린 사닥다리를 타고 / 이 세상을 벗어나간 그림자와 빛 / 밤바다를 가로질러가는 / 치욕의 지느러미, / 인광이다" ([초생달] 전문) 초생달을 보고 생각한 것일까. 상처에 대해 생각하다 초생달이 보였을까. 그의 눈에 비치는 것들은 시로 노래될 수 있는 것일까. 그의 시상이 자연물로 투영되는 것일까. 그의 시가 상투적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그건 시인이 감당해야 할 몫이겠지. 그러나 인위적이지 않고 제작된 시가 아닌 것이 분명히 장점이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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