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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무렵에 면도하기 - 첫번째 무라카미 라디오 ㅣ 무라카미 라디오 1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오하시 아유미 그림 / 비채 / 2013년 5월
평점 :
휴대전화의 착신 멜로디도 그렇지만, 후렴이 없는 음악은 함께할 곳이 없어 그런지 묘하게 지친다. 문득 생각났는데 세상에는 종종 '후렴이 없는 사람'도 있는 것 같다.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는 얼핏 옳아 보이지만, 전체적으로는 전개에 깊이가 없다고 할까, 미로 속으로 들어가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고 할까.....
p.51
세상에서 무엇이 가장 깊은 상처가 되는가 하면, 잘못된 칭찬을 받는 것일 터다. 이미 상당 부분 확신하는 바이다. 그런 칭찬을 받다가 망한 사람들을 많이 보아왔다. 인간이란 칭찬에 부응하고자 무리하게 마련이고, 그러면서 본래의 자신을 잃어버리는 사례가 적지 않다.
p187
나는 지금까지 인생에서 적지 않은 사람들에게 이별을 고해왔지만 '안녕'을 능숙하게 말했던 예는 거의 기억에 없다. 지금 돌이켜보면 '좀더 제대로 말했더라면 좋았을 걸' 하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후회가 남는다ㅡ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설령 후회스럽다고 해도 그래서 삶의 방식을 고칠 것도 아니고), 자신이 얼마나 부족하고 무책임한 인간인가를 새삼 실감하게 된다. 인간은 아마 어떤 일이 생겨 갑자기 덜컥 죽는 게 아니라 여러가지 이유를 켜켜이 조금씩 쌓으면서 죽음으로 가는 것일 테죠.
pp.205~206
무라카미 하루키, <저녁 무렵에 면도하기> 中
+) 이 책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상을 모아 놓은 작품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처럼 잔잔한 어조로 구성되었는데, 진실하게 쓰고 있단 느낌이 들 정도로 자신의 내면을 고스란히 담아 놓았다. 작품별 그림들도 이 책과 어울리게 구성되었다. 감정의 과잉이나 상투적인 깨달음을 이야기 하지 않아서 좋지만, 그로인해 좀 가볍고 심심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