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달리다
심윤경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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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이상한 일이었다. 사람이 간절하게 돈을 필요로 할 때는 결코 주지 않으면서 돈이 전혀 필요 없는 사람에게는 더 주지 못해 안달이었다. 돈이 필요한 사람은 치약이나 샴푸를 선물로 받는데, 돈이 많은 사람에게는 필요하지도 않은 상품권 봉투가 자꾸만 선물로 들어와서 수천만원씩 서랍에서 썩어갔다.

p.271

 

"우린 정말 치열하게 사랑했어. 그렇게 죽을 만큼 사랑했다는 점이 중요한 거야. 끝까지 잘되었으면 좋았겠지만, 이렇게 끝나더라도 크게 여한은 없어. 인생을 건 진짜 사랑은 그 자체로 훈장처럼 느껴질 때가 있거든. 어차피 사람은 죽으면 헤어지게 마련이니까."

p.369

 

"아무리 잘 버티는 사람이라도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어떤 일이 있거든. 다른 사람들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흔한 일이라도, 어떤 사람에게는 더이상 견딜 수 없는 일격이 되기도 하니까."

p.386

 

 

심윤경, <사랑이 달리다> 中

 

 

+) 이 소설에는 돈이 부족하지 않지만,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그래서 자꾸 더 돈을 필요로 하는, 한 가족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일류대를 졸업한 인텔리 엄마는 트럭운전사 출신이지만 엄청난 돈을 번 아빠와 결혼했다. 하지만 아빠의 바람으로 황혼 이혼을 하게 된다. 역시 일류대 출신이지만 돈을 제대로 관리 못해서 사업하는 족족 망하고 빚쟁이에 쫓기는 작은오빠, 돈이 많으면서도 가족에게 구두쇠처럼 구는 이기적인 큰오빠, 이들 모두를 비난의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정작 이혼한 아빠에게서 받은 신용카드를 매달 몇 백만원씩 쓰는 혜나가 그들이다. 

 

혜나의 시선으로 가족들의 관계가 구성되는데, 혜나는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을 비판하면서 자기 또한 그들처럼 생활하고 있음에 늘 괴로워한다. 시도때도 없이 술을 마시고 남편과의 관계를 동네 친구 정도로 여기다가, 결국 새로운 사람을 만나 남편에게 이혼을 선언한다. 그 새로운 사람이란 설정도 혜나에게서는 사랑이고, 혜나의 입장에서는 동지이며, 상처를 간직한 인물이다. (실상 그 상처가 두드러지게 표면화되지 않아서 조금 아쉽기도 했다. 예를 들어 그 남자의 가족 이야기는 과거 이야기와 연결성이 떨어진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비현실적인 듯 보이지만, 상당히 현실적이다. 경제적 스케일에 따라 다르겠지만, 요즘 세상에 이런 분위기의 가족이야 흔하지 않을까. 흥미로웠던 것은 '혜나'라는 인물이었다. 가족들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고, 자신도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지만 딱히 고치려고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만큼 답답한 기분을 술로 풀어내려한다. 현실에는 이런 모순적인 인물이 많지 않을까. 같은 상황은 아니더라도 우리는 조금씩 모순을 안고 살아가니까 말이다.

 

조금 아쉬운 점은 혜나가 만난 '정욱연'이란 남자와의 관계 설정이 너무 조급하게 흘러간 것이 아닐까 싶다. 좀 더 인연이 될 만한 꺼리를 제시하든가, 아니면 철저하게 계산적인 관계가 소설의 흐름상 더 어울리지 않았을까. 그래도 읽는 내내 재미있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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