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는 아니지만 - 구병모 소설
구병모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람은 누구나 일생 한가운데 분기점을 찍는 결정적이고 낭만적인 순간을 만나거나 수차례의 치명적인 고비에 이르러서쯤은 시인이 된다는, 전형적이지만 서정적이기도 한 믿음을 갖고 있었기에 시인은 주인의 말이 이해되지 않았다.

p.17 -[마치..... 같은 이야기]

 

 그러니까 내 말은 ........... 협조하지 않는 사람은 어느 정도 권리를 양보할 수 밖에 없다는 거야.

p.103 -[고의는 아니지만]

 

잘려 나가도 아픔을 느끼지 못하는 머리카락, 손톱, 온몸의 털끝 하나하나. 사람의 세포 하나하나는 수만의 정보와 감정을 간직하고 있어요. 심장이나 두뇌를 꿰맨다고 해서 사람의 온몸에서 솟아나는 감정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는 이유지요.

p.489 -[재봉틀 여인]

 

 

구병모, <고의는 아니지만> 中

 

 

+) 이 책은 아이러니하게도 현실 속에서 경험할 수 있는 환상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마치 ..... 같은 이야기]는 비유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체제의 이야기이다. 소재를 비유 사용 금지로 두었지만, 사실 독재의 시발점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타자의 탄생]은 술에 취했다가 정신이 드니 자기 몸이 도로 한가운데 철근 콘크리트와 함께 굳어버린 남자의 이야기이다. 현실 속에서 있을 것만같은 상상의 이야기이다.

 

중요한 건 작가가 이 책에서 풀어내는 환상성은 단순히 재미나 오락의 측면이 아니라는 점이다. 작가는 인간의 평범한 일상을 다루면서, 그 안에 잠재되어 있는 사람들의 분노와 폭력성, 무관심, 잔혹함 등등을 끌어내고 있다. 절망에 빠진 사람들을 뜯어먹는 [조장기], 잠을 자지 않고 울고 있는 아이를 세탁기와 전자레인지에 돌려버리는 엄마가 등장하는 [어떤 자장가]는 우리의 숨겨진 이면을 들춰낸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 이면에, 삶을 살아내는, 살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모습을 포착하고 있다. 구병모의 이전 소설들 <아가미>, <위저드 베이커리>에서도 드러나듯 작가에게 환상성은 흥미를 초월한, 그러니까 작가만의 사상을 드러내는 표현 능력의 하나라고 볼 수 있다. 현실과 환상을 잘 접목하고 있기에 현실 언저리에서 맴돌고 있는 환상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슬프지만 현실에 있을 법한 이야기, 잔인하지만 인물의 행동에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 등을 읽고 싶다면 이 책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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