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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는 잘해요 ㅣ 죄 3부작
이기호 지음 / 현대문학 / 2009년 11월
평점 :
"마음속으로 생각한 것도 죄가 될 수 있어요. 어때요, 여길 도망치고 싶지요? 도망치고 여길 신고하고 싶지요?"
p.82
"그런데 왜 네가 청소를 하는 거야? 넌, 사과 받는 사람이잖아?"
아이는 잠시 거울을 닦던 손을 멈췄다. 그리고 거울 속 우리를 노려보았다.
"더 미안해지라구요. 그게 내가 여기 있는 이유에요."
p.156
이기호, <사과는 잘해요> 中
+) 이 작품에는 굉장히 슬프고 씁쓸한 장면들이 몇몇 있는데, 그런 극적인 순간에서 피식, 하고 웃게 만드는 장면들이 뒤이어 나온다. 아마도 작가 이기호의 재주일 것이리라. 이 책은 죄가 뭔지 모르는 두 사람이 매를 맞지 않기 위해서 복지사들에게 죄를 지었다고 거짓말을 하고 사과하면서부터 모든 일이 시작된다. 그리고 거짓말로 고백했던 그들이 정말로 그 죄를 저지르게 된다. 왜냐하면 그래야 마음이 편하기 때문이다.
참 어이없지만 그 어이없은 일이 이 소설에는 진지하게 펼쳐진다. 설마 설마 하던 일들이 잔인하게 벌어지기도 하고, 꽤 심각한 장면임에도 아무렇지 않게 넘어가는 인물들의 대화와 행동이 서술된다. 어쩌면 그렇게 아무렇지 않은 가벼운 모습들이 이 소설의 의미를 역설할지 모른다. 의미를 감하기도 하지만 더하기도 하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사람들의 눈길이 닿지 않는 어느 곳에서 충분히 있음직한 일이란 생각을 했다. 또한 권력과 폭압에 길들여지는 순진한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분야만 다를 뿐 어디에나 존재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됐다. 이 소설은 웃긴 만큼 가슴 아픈 작품이다. 죄를 짓는 것이 무엇인지, 그 죄에 대한 대가를 치루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돌아보게 만드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