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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 한 개비의 시간 - 제3회 창비장편소설상 수상작
문진영 지음 / 창비 / 2010년 3월
평점 :
"절대로 그렇게는 못 살 것 같다고 생각하지. 근데 그렇게 살다보면 그런 식으로 사는 데 익숙해지는 거야."
p.49
"........ 나는 그게 겁이 나."
그녀가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을 이었다.
"사는 게 어렵지 않을까봐. 사는 게 쉬워질까봐. 그게 겁나...... 식물처럼 아무데도 가지 못할까봐. 너는 정말 괜찮단 말야?"
p.96
"나는 상대방 차례가 되면 그걸 기다려주기가 힘들었어. 왜냐하면 상대방이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무슨 생각으로 이 게임을 시작했는지 관심이 없었거든. 나는 늘 나 자신한테밖에 관심이 없었으니까. 궁금한 게 없다는 건 이기적인 거지. 그리고 그런 식으로 게임이 끝난다는 건, 애초에 시작하지 않은 거나 마찬가지야."
그리고 그는 회상이 지나가는 표정으로 말했다.
"없어도 살아졌다면, 살 수 있는 거야."
p.145
"난, 내가 그냥 이곳을 여행하고 있다고 생각해. 그래서 난 이제껏 모두를, 그냥 여행하듯 만나왔어. 언제든 헤어질 사람, 그런 전제로."
"왜 굳이 그래야 하는데?"
"그래야 가벼우니까."
p.147
문진영, <담배 한 개비의 시간> 中
+)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잿빛의 배경을 떠올렸다. 주인공에게 삶은 열정적으로 살아야 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지금의 시간들을 살아내는 것일 뿐이다. 억지로 사는 것도 아니고, 살기 싫은 것도 아니다. 그저 그냥 주어진만큼만 사는 것이다. 더 큰 욕심 따위 부리지 않고, 더 높은 곳을 향해 올라가려고 애쓰지도 않는다. 그리고 그만 그만한 삶을 사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바로 주인공이다.
타인의 시선으로 그들을 보면 어떨까.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사는 주인공을 보면서, 그 삶에 안주하는 그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어떤 생각을 할 수 있을까. 하긴, 꼭 그것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그 사람은 그 삶의 테두리에서 어떻게든 살아가고 있고, 불행한 삶을 사는 것은 아니니까. 생각하기 나름인 것일까.
이 소설은 삶에 안주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우울하지만, 우울하지 않게.. 그러니까 꽤 역설적으로 그려진다. 그들의 삶을 판단하는 것은 독자의 몫일 것이다. 이 작품에서 담배 한 개비의 시간처럼 습관적인 삶을 우리가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사는 것이 습관이 된다면 어떨까. 소설을 읽는 내내 잿빛 이미지 때문에 마음이 먹먹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