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없는 생활
둥시 지음, 강경이 옮김 / 은행나무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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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그소리를 알아듣기는 하는 거냐?"

"듣지는 못해도 소리를 만질 수는 있어요."

"이상하네. 라디오 소리를 못 듣는다면서 지금 내 말은 어떻게 알아들었지?"

왕자콴은 대답 없이 헤벌죽 웃어 보이기만 했다.

"사람들은 항상 똑같은 질문을 하거든요. 헤헤."

p.16

 

그가 질문하면 차이위전이 고개를 끄덕거리거나 가로저었고, 왕자콴이 옆에서 동작을 말로 묘사하며 의사소통을 했었다. 셰시주를 잡을 때도 듣지 못하는 왕자콴과 보지 못하는 그, 말하지 못하는 차이위전 세 사람이 손발을 척척 맞춰 그를 때려잡지 않았던가. 이 정도면 정상인 못지 않은 환상의 트리오였던 것이다.

p.69

 

둥시, <언어 없는 생활> 中

 

 

+) 이 책은 제1회 노신문학상 수상작이자 제15회 도쿄국제영화제 ‘최고예술공헌상’ 수상작 <천상의 여인>의 원작소설이다. 이 소설집에는 총 6편의 중단편 소설들이 실려 있다. 많은 사람들 속에 존재하지만 소통불가능한 상황에서 끝없이 외로워하는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는 작품들이다.

 

특히 표제작 <언어 없는 생활>은 귀머거리 아들과 장님 아버지, 그리고 벙어리 며느리의 모습을 통해 소통할 수 없는 사람들의 삶과 절망, 그리고 그들 나름대로의 극복 가능성을 보여준다. 정상인과 비정상인의 구분은 무엇인가. 이 소설을 읽으면 대체 누가 정상이고 누가 비정상인지 알 수가 없다.

 

듣지 못하거나, 보지 못하거나, 말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과 조금 다를 뿐이다. 그들이 우리와 다르다고 해서 우리가 그들을 무시하거나 함부로 할 권리는 없다. 그러나 이 작품에 등장하는 많은 사람들은 그들에게 함부로 굴고 그들이 자신들에 비해 약자라고 판단해버린다.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해 놓은 사람들이 말이다. 누가 감히 그걸 구분한단 말인가.

 

이 책은 냉혹한 현실을 잘 담고 있다. 또한 그 현실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의 깊은 속내와 본능까지 철저하게 파헤치는 작품들이 실려 있다. 마치 우리나라 1920~30년대 암울한 현실에서 가난과 폭압에 핍박 받으며 목숨을 연명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떠올리게 만든다. 이 작품에 실린 작품 중에서 <언어 없는 생활>이 가장 마음에 와 닿는다. 편견의 틀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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