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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미
구병모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제가 슬프다고 한 건, 저렇게 천편일률적인 방식으로 고통을 드러낼 수밖에 없을 만큼 사람들마다 삶의 무게가 비슷하구나 싶어서입니다."
p.51
사람은 자신의 몸에 입힌 기억이나 행위에 밀착되어 쉽게 벗어날 수 없는 법이기에, 곤은 자신을 구해준 강하가 그렇게 즉흥적으로 부레가 끓어서 자신을 죽이지는 않으리라는 걸 알아차렸다.
p.92
강하가 당신을 특별히 좋아하고 아꼈다고는 말하지 않겠어요. 하지만 '싫어'라는 건 반드시 증오만을 가리키는 게 아니에요. 달리 표현할 말이 마땅치 앖아 싫다는 것뿐이지 그건 차라리 혼돈에 가까운 막연함이에요. 그 막막함이야말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는 방식 가운데 가장 범위가 넓은 거라고 봐요.
p.166
구병모, <아가미> 中
+) 이 소설은 물고미의 아가미를 가진 남자의 이야기이다. 그는 호수 근처에서 살고 있는 노인과 노인의 손자 '강하'에 의해 발견되어 아이에서 소년으로 성장할 때까지 그들과 함께 살아간다. 남자가 어렸을 때, 그는 자신이 남들과 다르다는 점을 몰랐을테지만 서서히 인지하게 된다. 자신이 물속에서도 숨을 쉴 수 있다는 것을.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그때부터 그는 자신의 정체가 탄로나지 않도록 신경을 썼고, 숨어 지냈으며, 주로 혼자만의 시간을 가졌다. 물속에 들어가고 싶을 땐 늦은 밤 호수 깊은 곳까지 내려가곤 했다. 그가 가진 아가미와 그의 등에 빛나는 비늘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각기 달랐다. 누군가는 그것을 신비로워하고 누군가는 그것을 아름다워하며 또 다른 누군가는 그것을 놀라워한다.
아가미 남자 '곤'을 보며 두려워하는 사람들도 있을테지만 그의 모습은 인간의 내면 깊숙한 곳에 잠재하고 있는 신비로움이며 순수함의 상징이다. 이 남자의 운명적인 이야기가 마치 영화처럼 펼쳐진다. 이 작품은 탁월한 상상력과 탄탄한 구성을 갖춘 소설이다. 읽을수록 소설에 빠지게 되며 재미있게 읽느라 시간가는 줄을 모른다. 신비로운 영화 한 편 같은 소설이 생각난다면 이 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