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백치애인
신달자 지음 / 자유문학사 / 2002년 1월
평점 :
품절
나의 이러한 무모하다시피 한 어리석은 퇴보형의 감상에는, 실은 발전적인 경쟁에는 떨어져도 자신을 바라볼 수 있는 냉정한 시선과 스스로를 비판없이 무조건 사랑하는 모순의 양립된 심성이 도사리고 있는데 그 양립된 모순의 두 가닥은 제 능력의 한계를 인정하는 것과, 인정함으로써 스스로를 위안하려 드는 애정이 흐르고 있다.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조금 지나쳐서 그렇지 감상이 악은 아니니까. 경직되고 가파르고 바싹 마른 상식만을 내세우는 이론가보다 나는 좋다고 생각되니까 실생활에서 타산적으로 좀 손해가 오더라도 그쪽이 그래도 사람의 냄새가 나는 것 같기만 하다.
p.34
인간의 성숙이 여러 개의 빛나는 명성을 얻는 데도 있는 것이지만 이렇게 혼자 깊이 자신을 들여다볼 줄 아는 시간을 참아낼 줄 아는 힘을 가지는 것도 명성만큼이나 자신을 밝히는 빛이 되어 줄 것이다.
p.62
삶이란 지극히 상식적인 것을 상식적으로 받아들이는 수용태도가 지혜요, 능력이요,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의 태도라고 봐야 옳다. 이상하다고 보여지는 것, 특별하다고 보여지는 것, 범상식적인 법칙을 어긋나게 이탈하는 사람은 그만큼의 특별한 보상을 받게 되어지는 것이 아닐까. 별로 복스럽지 못한 그 어떤 보상이.....
p.100
사람의 가슴은 절대로 식어지는 게 아니다. 다만 그 뜨거움에 길들여져 가는 것이라 해도 좋다. 생명이 있는 날까지 그 순간까지 우리의 가슴은 뜨겁다. 언제나 두 손을 벌려 가득히 안겨움을 원하고 있다.
p.142
신달자, <백치 애인> 中
+) 신달자의 수필은 진솔한만큼 잔잔한 감동을 안겨준다. 이 책은 1988년도에 출판된 것으로 헌책방에서 구입한 것인데, 그러다보니 간혹 문장이 매끄럽지 못한 부분이 없지 않다. 하지만 적어도 글자 하나 하나가 진솔하고 성실하게 쓰여졌다는 것은 알 수 있는 책이다. '백치 애인'이라는 글을 무척 좋아한 적이 있다. 그래서 이 책을 구입했는데, 다른 글들도 한 편 한 편 나누어, 가끔씩 오래도록 읽으면 좋을 것 같다.
이 책은 한번에 다 읽는 맛보다, 한 편씩 한 편씩 자신을 들여다보고 싶을 때 읽는 것이 더 맛있다. 에세이를 접할 때마다 사람에게서 느끼는 감성이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게 되고, 내가 느낀 감정들을 누군가가 콕 찝어서 글로 표현해주었을 때의 반가움은 큰 기쁨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하는 좋은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