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속까지 잎사귀가 피어 있다 창비시선 216
박형준 지음 / 창비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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城에서 1

 

새집은 나무의 숨통이다.

겨울강 밑에 떠다니는 물고기들이

뚫어놓은 구멍들, 묘지의 구멍들,

다 영혼이 숨을 잘 쉬기 위해 그런 것이다.

 

성에서, 허물어진 土城의 끝을 걷다가

두 발을 탁탁 부딪힌다.

내게도 날개가 있었던가, 하는 생각이 잠시 인생을 상냥한 것으로 만든다.

하지만 날아본 기억이 없는 곳에서 길이 끝나고,

나는 산이 부화시키고 있는 알,

숨겨진 무덤들과

그 밑으로 펼쳐진 조그만 강을 아득하게 바라본다.

그리고 나무에 기대어

하늘로 뻗어 올라가는 길을 더듬는다.

 

밤이 되면 성은 기다란 몸을 추슬러

푸른 빛을 섞은 뱀이 되어

나무 위로 올라간다.

 

 

박형준, <물속까지 잎사귀가 피어있다> 中

 

 

+) 소멸의 기억과 그 괴로움을 노래했던 전작에 비해 이번 시집은 혼자 살아가는 쓸쓸함을 노래한다. 고독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무겁고, 외로움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깊고, 혼자만의 삶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가벼운 듯한 느낌이다. 혼자 사는 아들의 방을 오고 가는 어머니의 흔적과, 그 흔적을 따라 천천히 어머니를 그려보는 아들의 모습에서 시인만의 애틋함이 느껴진다.

 

박형준의 이번 시집에서 모든 자연물은 詩作의 시작점이 된다. 가만히 응시하고 서서 사유의 힘을 당긴다. 때로는 과거로 돌아가고, 때로는 미래를 상상하며, 또 때로는 현재를 돌아보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그가 바라보는 자연은 그의 시 창작의 근원이라는 것이다. 어쩌면 자신의 사유의 기본으로 자연을 끌어들인 것일수도 있다.

 

"자기야 저건 상처다 반쯤 뜬 자기의 눈이다 / 자기 눈꼬리에 매달린 사닥다리를 타고 / 이 세상을 벗어나간 그림자와 빛 / 밤바다를 가로질러가는 / 치욕의 지느러미, / 인광이다" ([초생달] 전문) 초생달을 보고 생각한 것일까. 상처에 대해 생각하다 초생달이 보였을까. 그의 눈에 비치는 것들은 시로 노래될 수 있는 것일까. 그의 시상이 자연물로 투영되는 것일까. 그의 시가 상투적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그건 시인이 감당해야 할 몫이겠지. 그러나 인위적이지 않고 제작된 시가 아닌 것이 분명히 장점이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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