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랑은 나비처럼 가벼웠다
유하 지음 / 열림원 / 1999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시월의 발라드'

 

노란 빛으로 제 몸을 밝히는 은행잎,

욕망을 버리기 직전의 몸들은

저리도 환하다

곧 추락의 시간은 다가오고

시월의 등불은 꺼지리라

 

그러나 떠오르는 달,

우주의 은행잎이여

너는 어떤 깨달음으로 자기를 환하게 밝히는가

욕망을 버리기 직전의 몸들과

욕망으로 가득 찬 몸

떨어지는 은행잎과 떠오르는 달

 

지나온 날들을 오래 뒤돌아보는 사람아

내 혼은 경쾌했고 언제나

뜨거운 심장은 날개를 원했다

아직도 나는 깨달은 것보다

깨닫지 못한 것들을 더 사랑한다

 

그러므로 나는, 뒹구는 은행잎의 반대편으로

내 시를 바치련다

시월의 저녁도 어찌할 수 없는

저 둥근 달을 향하여

 

 

유하, <나의 사랑은 나비처럼 가벼웠다> 中

 

 

+) 이 책은 가을에 어울리는 시집이다. 기존 유하시가 담고 있던 실험적인 작품들이 아닌 서정을 가득 담은 작품들로 엮여 있다. '느린 달팽이의 사랑'처럼 내면에 잠재되어 있는 사랑과 고독을 끄집어낸 책이다. 그것은 상대방에 대한 감정이기도 하지만 사실 자신에게 해당하는 말이기도 하다. 사랑과 고독을 타인과의 관계에만 한정하는 것은 옳지 않다. 물론 자신에게만 가둬두는 것도 옳지 않다. 그것은 나를 보는 시선이 되기도 하며 타인을 바라보는 시선이 되기도 하며 우리 사이의 거리를 조율하는 방법이 되기도 한다.

 

"달팽이가 자기만의 방 하나 갖고 있는 건 / 평생을 가도, 먼 곳의 사랑에 당도하지 못하리라는 걸 / 그가 잘 알기 때문"이다. "달팽이가 자기 몸 크기만한 / 방 하나 갖고 있는 건 / 평생을 가도, 멀고먼 사랑에 당도하지 못하는 / 달팽이의 고독을 그가 잘 알기 때문"이다. ([느린 달팽이의 사랑] 부분) 그의 시에서 '사랑'은 숨김없고 솔직한 것이다. 사랑에 당도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면서, 그리고 고독하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느릿느릿 사랑을 향해 나아간다. 

 

이 시집에서 화자는 상대방을 열정적으로 사랑하지만 곧 그것이 또 다른 자신을 사랑한 것이었음을 깨닫는다. "내가 날아들었던 당신이라는 불꽃 / 오랫동안 나는 알지 못했다. 실은 그 눈부신 불꽃이 / 나를 비추는 거울이었음을 // 나의 사랑은 나비처럼 가벼웠다" ([나의 사랑은 나비처럼 가벼웠다] 부분) 타인에게 자신을 투영하는 것. 그것을 사랑이라 받아들인 화자의 목소리는 우리를 되돌아보게 만든다. 따뜻하지만 쓸쓸함이 공존하고 있는 시집이다. 그러나 그것 자체가 우리에게 위로와 위안이 된다. 오래된 책이지만 찬 바람이 불 때 읽으면 마음에 위안이 되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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