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 파르티잔 행동 지침 민음의 시 166
서효인 지음 / 민음사 / 2010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블랑코의 잃어버린 코를 찾아서'

 

당신은 이 나라의 수도에 대한

유력한 격언을 몰라

당신의 눈을 감은 사이에, 이미

코가 없잖아 블랑코

코가 쑥 빠져 낙담하던 당신은 마른 세수를 하다

깨닫는다 걸리는 게 없이 평평한 안면

 

당신에 대한 세속의 믿음은 불안하고 불량해

과장된 만화에서나 나오는 표정으로 당신은 강제되어 있다

코가 없는 당신의 불행에는 시큰한 슬픔이 없다

슬픔 없이는 인정도 없다

누가 코도 없는 인류를 사람으로 보겠는가

당신은 술잔을 코 아래 가져오다 흠칫

코를 생각한다 평평한 안면이 둥글고 차가워진다

불량한 코 따위는 없어도 좋아, 위로해 보지만

코가 없는 당신은 코가 있는 자의 사회로부터

매 맞은 허벅지처럼 시퍼렇게 구별된다

피오키오처럼 탕감되길 원하겠지만

당신은 믿을 만한 사람이 아니며 그저 블랑코

코가 없을 만큼이나 불량한 족속

 

두개의 구멍을 점벙거리는

코들의 행진

불량한 풍경 속에서 잃어버린 코를 찾아 킁킁거리는 불랑코

"안녕하세요 블랑코에요 사장님 나빠요"를 세 번 외치면

쑥, 코가 솟아날 것이다

당신은 이 나라가 가진

농담의 미학을 몰라

세 번 네 번 같은 소릴 반복하다가

뒤늦게 알게 될 거야 둥글고 차가운 안면을 찌르던

당신의 불길한 코

화염 속에 잃어버린

 

 

서효인, <소년 파르티잔 행동 지침> 中

 

 

+) 서효인의 시는 읽고 난 뒤에 한참을 음미해야 참맛을 느낄 수 있다. 그의 시는 대체로 긴 편인데, 무슨 할 말이 이리도 많나 싶지만 읽다보면 그가 냉정하고 차분한 어조로 삶의 어두운 부분을 하나씩 짚어주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장학사가 오면 그때부터 학교를 단장하는 날이 되는 초등학생들부터([장난치기 좋은 날]), 쉴새없이 선생에게 맞아서 그 분노를 가슴에 담고 있는 학생들([분노의 시절- 분노 조절법 중급반]), 누군가가 이미 먹은 찌개를 또 다시 섞고 섞어서 새 것처럼 내오는 식당([속성]) 등등  '꾸밈있는' 그리고 '조작된' 삶이 난무하는 현실을 그린다. 

 

"닥치고 맞았다 숨거나 피할 수도 없는 거다 햇빛이 강한 거다 밝고 리얼한 거리에서 Street Fighter들은 이상하게 연전연패. "([거리의 싸움꾼 - 분노 조절법 초급반] 부분) 그들은 대부분 피해자다. 전혀 리얼하지 않은 리얼한 거리를 피하지 못한 채 일방적으로 걸어간다. 시인은 그렇게 쌓인 그들의 분노를 하나씩 끄집어 내어 그들의 모습을 비춰준다.

 

"속에 품은 독버섯 심장을 꺼내 던지면 / 오래된 슬픔으로 연금한 마법 수류탄이 / 분노의 파편을 퍼킹, 퍼킹, 퍽, 퍽, 퍽 / 사람들을 구할 테니 두고 봐라" ([수퍼 마氏] 부분) 분노를 품고 사는 사람들은 어떤 생각이 있을까. 자신의 분노를 아는 사람은 다행이지만, 자신의 분노를 모르는 사람은 불쾌와 분노와 불안을 간직하고 살아간다.  언젠가 그것을 꺼내 엉뚱한 장소에서 엉뚱한 사람들에게 터뜨릴지 모른다. 시인이 구하는 사람만큼 다치는 사람도 있겠지. 시인은 누구를 구하고 싶었을까.

 

이 시집은 인간 내면의 숨은 분노를 포착하여 우리의 곳곳에 잠재된 불안한 사람들의 면면을 제시한다. 공감하는데 시간이 걸리지만 발상이 흥미로운 시집이기도 하다. 그러나 공감이 쉽지 않은 만큼 읽기에 부담스럽기도 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