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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 - 제15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최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10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행복이 뭐냐고? 행복은 진짜다. 나는 아직까지 진짜를 본 적이 없으니까. 그게 어떤 건지는 잘 모른다. 하지만 딱 보는 순간 알 수 있다. 장담한다. 진짜란 그런 거니까.
나는 진짜를 찾기 위해 가짜를 하나하나 수집하는 중이다. 세상의 가짜를 다 모아서 태워버리면 결국 진짜만 남을 것이다. 시간은 좀 오래걸리겠지만, 그게 제일 확실한 방법이다.
p.56
사랑한다는 말은 어떻게 표현하지? 오랫동안 그 문제로 고민을 했지만, 사랑한다는 걸 행동으로 어떻게 나타내야 하는지 도무지 떠오르지 않아서, 결국 할머니에게 사랑한다는 표현은 할 수 없었다. 아쉬운대로 벽에 그 글자를 붙여두기만 했는데, 할머니는 가끔 그 글자를 멍하니 쳐다보면서 중얼거렸다. 맛있다. 밥 먹어. 잘 잤어. 할머니가 '사랑해'란 글자를 보며 상상하는 어떤 단어든, 결국은 다 사랑에 포함되는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사랑은 원래 그런 거니까.
p.82
걸으면서 걷는 이유를 까먹으면 아무 데나 주저앉아 내가 걷는 이유를 생각했다. 굶어 죽지 않기 위해 주워야 할 과자 부스러기, 동전, 진짜엄마. 어디로 가야 할지는 모르지만, 갈 곳을 모른다고 해서 제자리에만 앉아 있을 수는 없다. 진짜엄마를 찾아야 하는 이유가 기억나지 않는다고 해서 진짜엄마를 포기할 수 없듯이.
p.119
늘 불행한 사람이라면, 나를 알아보지 못할 테니까. 불행한 사람은 주변을 돌아보지 않는다. 오직 자기 가슴속만 보고 산다.
p.238
최진영,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 中
+) 이 책은 2010년 제15회 한겨레문학상 당선작이다. 2006년 「실천문학」 신인상을 통해 등단한 최진영의 장편소설인데, 당시 심사위원의 만장일치로 당선된 작품이다. '탁월한 감수성과, 말을 다루는 재주가 빼어나다'는 심사평을 받았는데, 그 심사평에 매우 공감한다. 오랫만에 추상어, 개념어를 제외한 짧은 문장으로 인간의 내면을 꿰뚫는 소설을 읽었다.
이 책에는 진짜 엄마를 찾는 소녀를 통해 현대 사회의 어두운 부분을 묘사한다. 게다가 그것을 아무 것도 모른 채 바라보면서, 마치 세상을 아는 사람처럼 행동하는 소녀의 모습이 그려진다. 자신의 이름도 모르는 소녀는 황금다방 장미언니, 태백식당 할머니, 교회 청년, 폐가의 남자, 각설이패 등을 만나면서 이전에 느껴보지 못한 행복을 느끼기도 하지만, 가장 행복한 순간마다 버려지거나 도망치게 된다. 그들을 만날 때마다 소녀의 이름은 늘 새로워지듯, 소녀는 행복에 대해 새롭게 느끼게 되고, 진짜 엄마의 조건을 하나씩 붙인다.
이 책은 철저하게 소외당한 소녀를 중심으로 인간의 욕망, 무관심, 가족 등의 의미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단순히 성장담으로 치부하기엔 이 소설이 제시해주는 것들이 더 크다는 생각이 든다. 간결한 문체를 사용하고, 사건의 전개에 치중하고 있는 문장이지만, 읽으면서 무척 재미있고 감동적이다. 그간 수상한 한겨레문학상 작품들 중에 높은 순위로 꼽을 수 있을정도로 괜찮은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