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혀 - 주이란 소설
주이란 지음 / 글의꿈 / 2008년 9월
평점 :
품절
몇 년 전 논란이 되었던 두 권의 책을 이제야 읽었다. 개인적으로 그동안 조경란 작가에 대한 신뢰와 존경이 컸기 때문에 '표절' 논란에 휘말린 그때 나의 충격은 무척 컸다. 그래서 일부러 더 시간을 두었나 모르겠다. 그러다가 갑자기 이 두 권의 책이 읽고 싶어져서 먼저 주이란의 <혀>를 꺼내들었다. 주이란 소설가는 정식적으로 문단에 데뷔한 소설가는 아니다.
그녀의 주장대로라면 단편소설 [혀]를 2007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응시했다가 탈락한 작품인데, 버젓이 조경란 작가가 같은 제목으로 장편소설 <혀>를 발표했다는 것이다. 그녀는 제목은 물론이고 소설의 구성 자체가 자신의 작품과 매우 흡사하다는 점에서 조경란 작가의 표절을 주장했다. 자신의 단편소설 [혀]에서도 사랑하고, 거짓말하고, 맛보는 존재로서의 '혀'를 구성했는데 조경란의 소설 <혀>에서도 마찬가지라는 점이다. 더 중요한 것은 조경란 소설가가 주이란이 신춘문예에 응모했을 때 예심 위원이었다는 점이다.
물론 주이란의 주장에 대해 조경란의 입장도 단호했다. 예심위원이었으나 이 소설을 읽은 적이 없었고, 자신의 소설 <혀>의 시놉시스는 주이란이 소설을 제출하기 몇 년 전부터 논의되어 왔던 작품이라는 것이다. 출판사 입장도 조경란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그러나 주이란은 그들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았고 계속해서 문제를 제기했다.
처음 이 소식을 들은 것은 인터넷 신문 [프레시안]을 통해서다. 주이란이 우리 문단의 보수층에 대해 과감하게 비난의 화살을 꼽은 시점이기도 하다. 주이란은 용감하게, 아니 어떻게 생각하면 앞으로 문단에 데뷔할 가능성을 포기한 것 같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강하게 자신의 주장을 어필했다. 자신의 소설들을 엮어서 책으로 만들었고, 끝없이 조경란과의 대립된 위치에 서 있다.
나는 그 싸움의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지 잘 알지 못한다. 그건 우리 문단이 그 표절 문제 자체를 쉬쉬하며 침묵하고 있고, 밝히길 꺼려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신문사에서는 논란의 중점에 있는 조경란에게 상을 주기도 했다. 물론 두 소설의 표절 문제에 대해서는 쉽게 말할 수 없다. 하지만 논란의 중심에 있는 작가를 옹호하고 나서는 신문사나 출판사, 그리고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소설가 지망생의 목소리에 침묵하고 있는 문단의 지독한 보수성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
엄정화가 주연한 영화 <베스트셀러>를 보았을 때, 왜 조경란과 주이란의 표절 문제가 떠올랐을까. 두 권의 책을 읽고 나는 조경란이 <식빵 굽는 시간>에서 부터 미각과 후각에 상당한 관심이 있는 작가라고 생각했다. 주이란의 사건이 없었다면 <혀> 역시 조경란이 미각을 깊이 있게 파고든 작품이라며 조경란의 소설임을 의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주이란의 <혀>를 읽으면서 과연 조경란의 <혀>가 온전히 그 작가만의 작품이었을까 의구심이 생긴다. 구성이 흡사한 것은 사실이니까.
하지만 또 이런 생각도 든다. 주이란의 작품에서 활용하는 것들이 과연 맨 처음일까. 바퀴벌레를 비롯하여 사람이 먹을 수 없는 것을 먹는다거나, 자신의 혀를 자른다거나.. 이런 것들을 상상해본 작가들은 있지 않을까. 아니, 혀를 자르는 것은 다른 소설에서도 있지 않았을까.
표절 문제는 역시 쉽게 다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대하는 문단의 태도이며, 이 문제를 투명하게 밝히지 않는 문단의 보수성이다. 그리고 관심두지 않는 문인들의 비겁함이 큰 문제라고 생각된다. 누구의 잘못을 가리는지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방관하는 우리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도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