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이야기 - 해방전후사의 재인식 강의
이영훈 지음 / 기파랑(기파랑에크리)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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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은 20세기의 한국사를 조명하는 중요한 시각이긴 합니다만, 그것만이 유일하게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보다 더 본질적이고 실체적인 역사의 단위가 있습니다. 저는 그것을 개별 인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본성은 자유이고 도덕적 이기심이고 협동능력입니다. 그러한 보성의 인간들이 상호 경쟁하면서 또 상호 협동하면서 건설해 가는 생산과 시장과 신뢰와 법치와 국가의 역사가 진정한 역사라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것을 문명사라고 자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pp.20~21

 

그러나 저는 감히 이야기합니다. 그러한 근본주의적 열정과 감성의 체계로서 민족주의는 대한민국을 세계의 선진사회와 선진국가로 발전시키기에 역부족이며, 자칫 잘못하면 대한민국의 선진국 진입을 가로막는 역사의 족쇄로 작용할 위험성이 크다고 말입니다.

p.35

 

흔히들 역사란 과거에 일어난 사건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역사에 대한 정확한 정의가 아닙니다. 과거에 일어난 사건에 대한 사람들의 기억, 그것이 역사이지요. 기억되지 않은 과거사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허무이지요.

p.65

 

흔히 사람들은 일제가 토지와 식량을 수탈했다는 교과서이 서술이 사실이 아니라고 하면 "그렇다면, 일제의 식민지 지배를 미화하자는 말이냐"라고 불쾌해합니다. 저는 제국주의 비판의 논리가 그렇게 단순해서는 곤란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국주의는 수탈의 여부로 비판할 것이 아니지요. 수탈 여부와 무관하게 제국주의는 그 자체로 비판의 대상입니다. 왜 그럴까요. 다름 아니라 인간 본성에 반하는 체제가 제국주의이기 때문입니다.

p.80

 

 

이영훈, <대한민국 이야기> 中

 

 

+) 며칠전에 서울대 총학생회에서 올해 신입생들에게 이 책을 선물하여 각종 신문이 시끄럽다. 물론 나는 그래서 이 책을 읽은 것은 아니었고 우연히 이 책 한번 읽어보자는 마음으로 읽었는데 하필이면 시기가 지금이다. 이 책은 몇 년 전 100분 토론 '망언'이란 표현으로 화제가 되었던 이영훈 교수의 책이다. EBS에서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에 관련된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의 원고를 단행본으로 만든 것이다.

 

일명 뉴라이트 역사서로 불리는 이 책을 읽으면서 얼굴이 붉어지고 이렇게 말해도 되나 싶을 정도의 부분들이 꽤 있다. 역사서는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끼치는 편이다. 그건 사실 판단 여부를 판단하기 전에 일단 사실이라고 믿어버리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을 고려할 때 이런 책은 꽤 위험하다. 작가가 펼치는 생각은 지금까지의 대한민국 역사를 바라본 시각과 솔직히 많이 다르다. 특히 일본과의 관계처럼 민감한 부분에 대해서는 더더욱 그렇다.

 

그렇기에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부분이 대중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안봐도 뻔한데, 과감하게 적어 내려간 필치에 쓴웃음이 났다. 무엇이 사실인지 판단하고 올바른 역사를 구성하여 선진 사회를 구성하자는 말은 틀린 말이 아니지만, 그 사실을 판단하기에 앞서 작가가 강조하는 개별 인간의 측면에서 '도덕성'을 외면할 수 없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정신대와 위안부의 차이를 알리는 것은 우선적인 일이 아니다. 아니, 그 차이를 알리고 싶었다면 오히려 그보다 앞서 그 일로 어마어마한 상처를 받은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치유하는 것이 먼저다. 

 

경제학자라서 그럴까. 선진사회로 나가아기 위해서,라는 발언은 좀 씁쓸하다. 선진국가, 선진사회를 논하기에 앞서 중요한 것은 작가가 위험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근본주의적인 열정과 감성'이다. 근본주의적인 열정과 감성이 상처받은 사람들에게 그것을 논하는 근본이 잘못되었다고 구조적으로만 이야기한다면 그것만큼 어리석은 것이 있을까. 사람들이 일본의 사과를 요구하는 것은 모든 것을 다 떠나서 과거에 일본인이 저지른 잘못은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일부로 전체를 매도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작가의 말대로 인간 본성에 반하는 제국주의 그 자체의 잘못을 지적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말이다.

 

이데올로기를 떠나서, 체제를 떠나서, 나는 한 독자로서 이 책을 읽으면서 과연 역사를 생각하고 고민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중요한 것은 과거에 일어난 것에 대한 기억을 현재의 우리가 관심을 갖고 계속해서 들여다보아야 사실도 되찾을 수 있는 것이고 포기하지 말고 난감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천천히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 맹목적이고 극단적인 판단이 실린 역사서는 그것이 좌파 계열이든 우파 계열이든 옳지 않다고 본다. 더 많은 대중들이 역사에 관심을 갖고 함깨 고민할 수 있는 역사서가 많아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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