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의 궁전
폴 오스터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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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삶을 써 나가는 작가야. 네가 쓰고 있는 책은 아직 끝나지 않았어. 그러니까 그건 원고인 셈이지. 그보다 더 적절한 게 뭐가 있겠니?"

p.15

 

나에게 있어서는 단 한 가지 미래는 커녕 전혀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나에게 있어서 단 한 가지 미래는 지금 살아가고 있는 현재였고, 그 현재에 그대로 머물러 있기 위한 투쟁이 점차로 다른 모든 일들을 능가했다. 나는 더 이상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한 순간 한 순간이 차례로 펼쳐졌고 그 한 순간마다 미래는 불확실성의 텅 빈 백지 상태로 내 앞에 놓여 있었다.

p.65

 

나는 절벽 가장자리에서 뛰어내렸지만 떨어져 죽기 직전에 뭔가 예사롭지 않은 일이 일어났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내가 그렇게 사랑을 받는다는 사실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 떨어져 내리는 두려움이 줄어들지는 않았더라도 그 두려움의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 새로운 조망을 얻은 것이었다. 나는 가장자리에서 뛰어내렸지만 마지막 순간에 뭔가가 팔을 뻗쳐 나를 허공에 걸린 나를 붙잡아 주었다. 나는 그것이 사랑이었다고 믿는다. 사랑이야말로 추락을 멈출 수 있는, 중력의 법칙을 부정할 만큼 강력한 단 한 가지 것이다.

p.77

 

어쩌면 그것은 모두 내가 처음부터 증명하려고 설정했던 것 - 자신의 삶을 운명에 내맡기고 나면 전에는 결코 알지 못했던 것. 다른 어떤 상황에서도 배울 수 없었던 것을 알게 되리라는 - 일 수도 있었다.

p.87

 

 

폴 오스터, <달의 궁전>

 

 

+) <달의 궁전>은 한 편의 장편 드라마 같다. 어렸을 때 어머니를 여읜 주인공 남자가 외삼촌의 손에 길러지고, 외삼촌이 죽자 남자는 삶의 의미를 잃게 된다. 대학을 나왔지만 산다는 것의 열정을 잃어버린 채 노숙자의 생활을 하며 삶을 이어간다. 남자는 그런 생활을 하는 자신이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 잘 모르고, 살 수 있는데까지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런 남자를 구해준 여자가 있다. 여자는 남자의 삶에 의미를 부여한다. 친구를 만나게 해주고, 친구를 통해 삶의 보금자리를 마련해준다. 남자는 자신을 보살펴준 친구에게 보답하기 위해 일을 하게 되고, 그러면서 한 노인을 만나게 된다. 노인에게서 엄청난 과거를 듣게 된 남자는 노인이 죽게 된 뒤 노인의 아들을 만나고, 사실 그가 바로 자신의 아버지라는 걸 알게 된다.

 

우연의 우연의 우연을 거듭하는 드라마 같은 소설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현재 유행하는 근거 없는 인연들이 난무하는 막장 드라마가 아니다. 이 작품 속 인물들의 만남은 대부분 우연이지만 억지로 끼워 맞춘 삼류가 절대 아니다. 마치 운명처럼 그렇게 만나게 되는 필연 같은 우연이랄까. 상당히 두꺼운 분량의 이 소설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던 것도 스토리의 구성이 탄탄했기 때문이다.

 

남자에게 "태양은 과거고, 지구는 현재고, 달은 미래다." 과거, 현재, 미래가 우주에 존재하고 있다. 사실 남자는 현재가 중요한 인물이다. 그 현재의 반복이 언젠가 과거로 나타나는 것이고, 또 언젠가 미래를 그려내는 것이다. 이 소설은 왜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서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며, 방황하는 젊은 영혼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좋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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