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와 고봉, 편지를 쓰다
김영두 옮김 / 소나무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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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 벼슬에 나아가고 들어가는 거취는 마땅히 스스로 결정해야지, 내가 남을 위해 꾀할 수 있는 일이 아니며, 또한 남이 나와 함께 꾀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라는 호강후의 견해는 뛰어나서 본받을 만합니다. 다만 평소에 이치에 정밀하지 못하고 의지가 굳지 않으면, 스스로의 결정이 혹시 시대의 도리에 어둡거나 또는 바람과 그리움이 앞서게 되어, 그 마땅함을 잃을 뿐이라는 점이 걱정입니다.

p.31  퇴계

 

주신 편지에 "이치에 정밀하지 못하고 의지가 굳지 못하면, 스스로의 결정이 마땅함을 잃게 됨을 면하기 어렵다." 하신 말씀은 참으로 옳은 말씀이며, 제가 지난날 의심했던 것입니다. 이에 자세한 가르침을 받들었으니, 단지 한 면만을 깨닫게 되었을 뿐 아니라 다른면도 알게 되었고, 단지 잠시 동안 행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몸이 다할 때까지 지킬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전에 스스로 결정하고자 했는데 만약 그랬다면 빠뜨린 것이 매우 많지 않았겠습니까?

p.44  고봉

 

 

김영두, <퇴계와 고봉, 편지를 쓰다> 中

 

 

+) 이 책은 조선시대 성리학자 퇴계 이황과 고봉 기대승이 주고 받은 편지글로 엮인 것이다. 그들의 편지는 일상의 안부나 소식을 전하는 것은 물론이고 자신들의 학문적 의문을 해소하고 학문적 논쟁을 가능하게 만든 수단이었다. 이 책에서는 특히 그들의 학문적 논쟁과 관련된 편지를 따로 엮어서 읽기에 편하다. 나는 그들의 편지를 보면서 요즘 우리가 얼굴을 맞대고 하는 세미나 혹은 동아리 모임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이는 서로가 공부를 위해 학자로서 존중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들의 편지가 주목받을 수 있었던 이유에는 여러가지가 있겠으나 사단칠정론을 비롯한 여러 학문적 사상과 학자로서의 모범적인 자세를 배울 수 있기 때문이 가장 크지 않을까 싶다. 무엇보다 나는 고봉과 퇴계가 20년이 넘는 나이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같은 학자로서 서로를 믿고 의지하는 모습이 매우 보기 좋았다.

 

같은 길을 걷는 벗의 소중함은 이런 것이 아닐까. 책을 통해서, 경험을 통해서, 스승을 통해서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함께하는 벗을 통해서 배우는 것이 진실하고 소중한 게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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