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이 없는 십오 초 문학과지성 시인선 346
심보선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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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할 수 없는 소문'

 

나는 나에 대한 소문이다 죽음이 삶의 귀에 대고 속삭이는 불길한 낱말이다 나는 전전긍긍 살아간다 나의 태도는 칠흑같이 어둡다

 

오지 않을 것 같은데 매번 오고야 마는 것이 미래다 미래는 원숭이처럼 아무 데서나 불쑥 나타나 악수를 권한다 불쾌하기 그지없다 다만 피하고 싶다

 

오래전 나의 마음을 비켜간 것들 어디 한데 모여 동그랗고 환한 국가를 이루었을 것만 같다 거기서는 산책과 햇볕과 노래와 달빛이 좋은 금실로 맺어져 있을 것이다 모두 기린에게서 선사받은 우아한 그림자를 지니고 있을 것이다 쉽고 투명한 말로만 대화할 것이다 엄살이 유일한 비극적 상황일 것이다

 

살짝만 눌러도 뻥튀기처럼 파삭 부서질 생의 연약한 하늘 아래 내가 낳아 먹여주고 키워준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정말 아무 것도 없다 이 불쌍한 사물들은 어찌하다 이름을 얻게 됐는가

 

그렇다면,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이 살아 있음을, 내 귀 언저리를 맴돌며, 웅웅거리며, 끊이지 않는 이 소문을, 도대체,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심보선, <슬픔이 없는 십오 초> 中

 

 

+) 이 시집은 '슬픔이 없는 십오 초'간을 묘사하고 있는 시들이 많다. 그것은 다른 것으로 관심을 돌리기도 하고, 잊어버리기도 한다. 화자는 시어에서 세계를 제외시켰다고 했다. "내 언어에는 세계가 빠져 있다" ([슬픔의 진화]) 이는 처음부터 제외한 것이 아니라 이제, 어느 순간, 슬픔이 극에 달한 순간, 제외한 것이다. 시인은 세계에, 시인에, 언어에, 그리고 자아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다.

 

스스로를 알아내기 위해서 몸부림치나 잘 모르겠는 것이 사실이다. 시인에게 세계는 자신을 투영하는 또 다른 문이 된다. 그리고 인생은 스스로를 알아가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그것은 자신에게 어떤 자격을 부여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과정이다. 그 과정 중에 얻게 되는 많은 정서들 중에서 그는 유달리 슬픔이 없는 십오 초에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사랑을 잃은 자 다시 사랑을 꿈꾸고, 언어를 잃은 자 다시 언어를 꿈꿀 뿐." ([먼지 혹은 폐허]) 그에게 십오 초라는 시간은 잃은 것에 대한 아픔을 다독이는 시간이다. 아무 의미 없는 언어들의 나열이기도 한 이 시간은 역설적이게도 또 다른 언어를 만들어 내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것은 그가 시인이라는, 혹은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이라는 점에서 지속될 것이다.

 

이 시집을 읽으면서 시를 통해 무언가 건져 내려고 기대했다면 기대를 버리자. 이 시집은 건져 내기 위한 낭독이 아니라 비우기 위한 낭독이어야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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