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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젊은 날의 숲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1월
평점 :
돈이 떨어지면 지나간 날들을 돌이켜보게 된다. '돌이켜본다'는 이 말이 도덕적으로 반성은 아니다. 돌이켜본다는 말은 돌이켜 보인다라고 써야 옳겠다. 보여야 보이는 것이고 본다고 해서 보이는 것도 아닐 터이다. 돈이 있을 때는 보이지 않던 것이 돈이 다 떨어지고 나면 겨우 보이는 수가 있다. 그리고 거기에는 돈 떨어진 앞날에 대한 불안이 스며들어 있을 것이다.
p.46
다 그려놓고 보니, 연필이 지나간 자리에 흑백의 흔적만 남아 있었다. 본다고 해서 다 그릴 수는 없을 것이었다. 본다고 해서 보이는 것이 아니고, 본다와 보인다 사이가 그렇게 머니까 본다와 그린다 사이는 또 얼마나 아득할 것인가를, 그 아이의 뒤통수 가마를 보면서 생각했다.
p.187
사실 나는 외롭다는 감정이나 상태를 잘 이해하거나 체득하지 못하는 편이다. '외롭다'는 상태는, 본래 그러한 것이어서 외롭다, 라고 말하는 것은 존재한다고 말하는 것과 같은 말로 나는 알고 있었다. '존재한다'는 뜻 이외에 '외롭다'라고 말하는 글이나 노랫가락이 어떠한 상태를 말하고 있으며, 무엇을 지향하고 있는 것인지를 사실 나는 정확히 체득하지 못하고 있었다.
p.289
김훈, <내 젊은 날의 숲> 中
+) <칼의 노래>와 <남한산성>을 읽을 때에도 나는 그런 생각을 했었다. 이 작가는 어쩜 이렇게 거리를 두고 인물들을 묘사할 수 있을까. 여기서 '거리'는 인물과 인물 사이의 관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작가와 인물 사이의 관계를 말한다. 애끓는 감정에 터질듯한 인물도, 처절하게 비통한 심정과 복받치는 분노를 가진 인물도 작가는 자신과의 거리를 냉정하게 유지한채 소설 속 인물로 형상화해 낸다.
이번 소설도 그랬다. 공무원인 아버지가 뇌물을 준 죄로 복역을 하게 되고,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가 나올 때까지 끝없이 딸에게 전화를 해댄다. 그건 남편이 출소했을 때의 불안감이기도 하고, 남편에 대한 안타까움이기도 하고, 남편에 대한 애증이기도 하다. 그런 어머니의 하소연을 피곤하고 짜증스러워하는 딸이 이 있다. 그림을 그리는 계약직 공무원의 직업을 갖고 민통선 안에서 삶을 만들어가는 여자.
김훈은 이번 소설에서 꽃과 나무가 어우러진 풍경과 비극적인 삶을 살아가는 인물들을 중첩시켜 놓고 있다. 이번 소설에서의 아름다운 풍경들은 인물들 각자가 간직한 내면의 아픔을 더 분명하게 드러낸다. 여전히 그는 철저하게 자신의 목소리를 배제한 채 풍경만으로, 인물들의 몇 마디 대화로, 그들이 간직한 고뇌와 아픔, 그리고 상처를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풍경이 두드러져 보여서일까. 이번 소설은 유달리 몽환적이란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