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모른다
정이현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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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뭐래 해도 결단코 바뀌지 않는 것을 진실이라고 부를까? 알 수 없었다. 세상은 진실의 외피를 둘러쓴 악의로 가득 차 있다는 것, 아이가 짐작하는 건 겨우 그것뿐이었다. 타인을 겨냥한 악의는 어쩌면 입구를 단단히 동여맨 풍선 같았다. 시간이 지난다고 저절로 쪼그라들지 않았다. 뻥 터져버리는 순간을 기다리는 게 나을 수도 있었다.

p.163

 

돌아보면 지금껏 비겁하기만 했다.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음으로 아무것도 망가뜨리지 않을 수 있다고 믿었다. 덧없는 틀 안에다 인생을 통째로 헌납하지 않을 권리, 익명의 자유를 비밀스레 뽐낼 권리가 제 손에 있는 줄만 알았다. 삶은 고요했다. 그 고요한 내벽에는 몇 개의 구멍들만이 착각처럼 남았다.

p.199

 

 

정이현, <너는 모른다> 中

 

 

+)   추리소설 같다고 할까? 한 편의 영화를 본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이 소설의 바탕에는 가족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이 깔려있다. 고전적으로 말하는 가족은 혈연으로 맺어진 개념이다. 그러나 현대가 핵가족화 되고 있는 시점에서 혈연 관계가 다르거나 부모 중 일부만 같다거나 했을 때 사람들은 당황스러워한다. 이 소설에서 가족이라고 보기에는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받은 흔적이 많은 사람들이 가정이라는 한 둘레 안에 살고 있다. 그들이 가족 중 한 사람을 잃었을 때 어떻게 반응하는지 잘 드러나는 작품이다.

 

소설이 후반부로 접어들수록 그것은 좀 더 확실해지는데, 기존의 자신만이 타인과 같다고 생각하며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삶을 거부하던 이들도 가족이 실종되었을 때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가정으로 돌아온다. 그러면서 가족들은 서로의 관계를 확인하게 되고, 자신도 모르게 그들끼리 뭉치게 된다. 이 소설은 추리소설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 바탕에는 가족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작품 길이에 비해 결말이 좀 식상하지만, 글의 흐름이 끊기지 않고 잘 쓰여진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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