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 - 개정판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윤옥 옮김 / 북스토리 / 2010년 8월
평점 :
품절


" 안 좋은 일이 있다는 건 인생의 중심에 서 있다는 증거야."

"네?"

"내 나이쯤 되면 안 좋은 일조차 없어. 워낙에 갈 곳이라야 병원하고 도서관하고 은행밖에 없거든. 그런 곳을 빙빙 돌아봤자 무슨 일이 생기겠니? 이번 연휴 때는 정말 어째야 좋을지 모르겠더라니까. 병원도 도서관도 은행도 죄다 문을 닫아버렸으니. 겨우 연휴가 끝나서 아휴, 잘됐다 했네. 그래서 냉큼 은행으로 갔더니만 자네가 안 좋은 얼굴을 하는 거야."

 

"아무튼 안 좋은 일이라도 아무 것도 없는 것보다는 나아."

p.218

 

"샐러리맨으로 살다 보면 말이지. 이놈만은 절대로 용서 못하겠다는 인간이 한둘은 있게 마련이야. 나한테는 바로 그자가 그런 존재였어."

p.304

 

어째서 늘 일이 이렇게 꼬이는가.

조금이라도 좋은 일이 생기면 그보다 몇 배는 나쁜 일이 덮쳐들었다. 마치 인간의 운명을 갖고 놀듯이 어딘가에서 악마가 킬킬거리고 있었다.

p.321

잃은 것은 너무나 컸다.

하지만 어디서부터 후회를 해야 놓을까.

신지로는 그것조차 알 수 없었다.

p.591

 

 

오쿠다 히데오, <최악> 中

 

 

+) 사는게 지루해질 무렵 꼭 생각하지 못했던 불상사가 터지는 순간이 있다. 그런 세 사람이 모였다. 대기업의 횡포에 소리없이 당하기만 하는 말단 공정 철공소 사장 신지로, 말이 사장이지 빚을 청산하는 문제로 골치가 아프고 작업 중 발생하는 소음 문제로 이웃과 씨름하는 사람이다. 새엄마와 살면서 빗나가는 여동생 때문에 마음 아파하는 은행원 미도리, 상사에게 성추행을 당하면서도 입을 다물 수 밖에 없는 현실에서 힘겨워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가즈야. 처음부터 자기 인생은 떠돌이라고 생각하는 백수. 다른 사람들을 공갈 협박하거나 파친코로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들 셋이 만화 같은 이야기에 엉켜버려 어쩌다 보니 은행 강도가 되었다. 그리고 그 이야기의 중점에 그들을 연결하는 미도리의 여동생과 미도리가 다니는 은행이 있다. 돈을 빌리려는 사람들에게는 한없이 높은 곳. 아니, 돈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한없이 귀하고 도도한 돈이라는 놈이 존재하는 장소가 은행이다.

 

나름대로 평범한 일상을 보내던 이들이 최악의 상황까지 떨어지는 시간은 얼마 걸리지 않았다. 정말 '순간'이 그들을 인생의 바닥까지 끌고 내려간다. 그리고 되찾은 평온. 오랜 시간 죄를 지은 벌을 받겠지만, 평생 해보지 못할 분노의 표출로 인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 것 같다. 인생의 최악이라고 생각할 때, 필요한 것은 그것에서 한 걸음 비껴서는 인내와 지혜이다.

 

그동안 긍정의 힘,을 알려준 오쿠다 히데오의 소설들과 달리 최악,의 상황을 제시하는 이번 소설은, 최악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긍정적인 마무리로 구성되었다. 그게 우쿠다 히데오란 작가의 매력이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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