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말하지 않는 것들 - 김이설 소설집
김이설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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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여자가 물었다. 과거에 대한 질문은 자기 고백을 위한 전제이다. 여자는 제 얘기를 하고 싶은 것일까.

p.53  [엄마들]

 

나는 립스틱을 먼저 발랐다. 아이가 벌떡 일어나 손을 흔들었다. 립스틱을 바르면 나간다는 걸 아이는 알고 있었다. 사소한 것이 기억의 뿌리가 된다. 습관이란 그런 것이었다.

p.134   [오늘처럼 고요히]

 

일상의 너저분함을 고스란히 보이는 걸로 자기 위안을 삼는 윤영에게 나는 경외심을 느낄 지경이었다. 우울하고 외로운 걸 쉽게 인정하는 사람들은 참 살기 쉬울 것이다. 웃고 싶지 않을 때 웃지 않고 산다는 건 부러운 일이었다.

p.240  [하루]

 

 

김이설 소설집, <아무도 말하지 않는 것들> 中

 

 

+) 작가의 말을 빌려 표현하자면 '아무도 말하지 않는 것들'은 원래 '누구나 알지만 아무도 말하지 않는 것들'이었다. 그래서일까. 이 소설집에 실린 작품들은 우리가 신문 사회면에서 봤음직한 우울한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 대개 개인적인 가정사에 속하는 가족이야기가 큰 소재가 된다. 작가의 가족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의심될 정도로 가족 내부의 아픈 곳을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소설이다.

 

[열세 살]은 신춘문예 당선작으로, 열 세살의 소녀가 노숙자로 살아가면서 평범한 사회 구성원이 되기에 어려움이 많은 것을 깨닫게 되는 이야기이다. 탐욕에 가득 찬 어른들이 어린 소녀에게 갖는 관심이란 그들의 욕심을 허겁지겁 채우는 장난감에 불과하다. 소녀를 주인공으로 세운만큼 암울하고 탁한 사회 이면이 냉정하게 묘사된다.

 

[하루] 옆집 여자의 죽음으로 사람 사이의 관계를 되돌아보게 되는 작품이다. 죽었다는 사람과의 친분을 따지는 관계에서 사람에 대한 배려보다, 나와 어떤 관계인지를 먼저 따지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오늘처럼 고요히]는 노래방 도우미로 일하는 주부의 삶이 악순환의 반복임을 제시한다. 가정을 지키기 위해 돈을 벌기 위해 시작한 일인데 결국 한 가정을 철저하게 파괴하고, 또 다른 가정 역시 피해를 주는 모습이 잘 그려진 작품이다.

 

소설을 읽으면서 내내 신문 기사화된 몇몇의 사건들이 떠올랐다. 그만큼 낯선 소재는 아니기에 익숙하다는 단점과 동시에 익숙한 것을 깊이 파고들었다는 장점을 지닌 소설들이다. 작가의 새로운 작품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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