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녀의 일기장
전아리 지음 / 현문미디어 / 2008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아빠라면 저런 애처가로의 위장술쯤은 문제도 아닐 텐데. 어째서 엄마에게 살가운 거짓말을 해 주지 않는 것일까. 약간의 거짓말로 삶이 편해질 수 있다는 것은 분명 아빠도 알고 있는 사실일 텐데 말이다.

p.27

 

그러고 보면 거짓말조차 필요 없는 관계란 꽤 슬픈 것 같기도 하다. 민정이의 말대로, 선과 선이 한 번 맞물리고 나면 그 뒤로는 계속 멀어지기만 하는 것이 사실이긴 하지만, 둘 중 한 개의 선이 몸을 구부려 곡선이 되기만 하면 다시 만나는 것쯤은 별거 아닐 텐데.

p.33

 

타인의 죽음이 너무 허무하다고 느껴지는 것은, 우리더러 삶을 좀 더 쉽게 받아들이며 살라는 세상의 암시가 아닐까. '끝은 이렇게 간단하고 순식간이야. 그런데도 너 계속 그렇게 미적거리며 우울하게 살래?'라는 투로 말이다.

pp.118~119

 

끝과 시작은 늘 사이좋은 친구처럼 같은 자리에 붙어 앉아 나를 기다린다.

p.259

 

 

전아리, <직녀의 일기장> 中

 

 

+) 제 2회 세계청소년문학상 수상작이었던 이 작품은 '직녀'라는 아이의 시점에서 서술된다. 항상 다른 여자를 만나는 아빠와 오빠만 아는 엄마, 늘 문제를 일으킨 것보다 더 많이 '문제아' 취급을 받는 직녀의 이야기이다. 직녀의 시선에서 아빠와 엄마 그리고 오빠의 모습을 관찰하고 있기 때문에 객관적인데, 흥미롭게도 그 객관성이 독자인 나에게 더 철저하게 인간적인 연민을 만들어 냈다. 청소년기는 이렇게 성장하는 것이 아닐까. 자신의 생각을 표출하는 것보다 타인의 목소리에 더 귀기울이라고 강요받으면서 말이다.

 

가족 안에서 홀대 받는 아이는 한 줄 짜리 일기장을 쓰기 시작하는데, 아이는 친구에게 뒷통수도 맞아보고, 고모를 만나 자신도 사랑받고 있는 존재임을 확인하기도 하며 성장한다. 그 정신적인 성장이 아이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두고 보아야 알겠지만, 그런 것들이 쌓여서 아이의 삶이 만들어지는 것이라 생각된다.

 

우리는 흔히 청소년들이 깊고 많은 생각을 하지 못한다고 판단한다. 하지만 정작 많은 생각을 '너무도 많이' 하는 어른들의 판단이 더 미성숙한 것이 아닐까. 책을 읽으면서 이런 아이를 동생으로 두었다면 어땠을까 상상해본다. 대화,가 있었다면 직녀는 분명 달라졌을 것이다. 사람을 믿는 법은 가족에게서 배우게 되는게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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