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편지하지 않다 - 제14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장은진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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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삶 중 머리와 가슴이 가장 열려 있을 때는 여행을 하며 보내는 시간이라고 나는 감히 말하곤 한다. 인생 중 가장 생각이 많아지는 시간. 어쩌면 평생을 살아도 해보지 못할, 혹은 못했던 생각을 그때 하게 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평생을 살아도 해보지 못할 생각을 글로 남기지 않는다는 건 생의 손해이자 실수다. 사진은 다시 가서 찍을 수 있다. 기념품도 얼마든지 다시 살 수 있다. 그러나 여행중에 스쳤던 생각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다시 갔을 때의 감정과 느낌은 이미 그때의 그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pp.13~14

 

"맞아요. 선택의 기회를 준다는 건 무시하지 않는다는 거에요."

p.24

 

그러나 새우맛도 당기고, 김치맛도 당기고, 걸음을 옆으로 옮기자 나중에는 자장맛까지 당기는 걸 보니 종류의 다양성이란 결국 무시하지 않음을 가장한 욕망의 부추김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주소없는 사람에게도 욕망은 필요한 거니까. 그러나 어딜 가도 인간은 선택과 결정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날 수는 없나보다. 어느 한쪽을 고르지 않으면 삶은 결코 굴러가지 않으니 말이다.

p.26

 

밤새 쓴 편지를 아침에 확인하는 건 자기를 부정하는 행위다. 다시 읽어보면 과거의 잘못처럼 삭제하고 싶은 문장 한두개쯤은 반드시 발견된다. 너무 감정에 충실해서 혹은 용기가 충만해서 생긴 증상이니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밤에라도 용기를 가질 수 없다면 우리는 평생 비겁하게 살아야 할 것이다. 투입구로 편지를 집어넣는다.

p.36

 

 

장은진, <아무도 편지하지 않다> 中

 

 

+) 주인공 '나'는 현재 자신의 생에 있는 중요한 것들을 버리고 '고요한 안정'을 찾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은 1, 2, 3 등의 숫자로 이름을 짓게 되는데, 그것은 무한대로 뻗어나갈 숫자의 위대함과 그 이름들을 잘 기억하는 '나'의 기억력 때문이다. 어쨌든 그가 여행을 다니면서 만나게 되는 무수한 사람들을 통해 그는 삶의 새로운 점들을 깨닫고 배우게 된다. 자신도 모르게 사람들을 만나면서, 가족들을 떠올리고 그들과 자신의 추억에 젖어든다.

 

매일 하루 한 통씩 편지를 쓰면서 여행의 하루를 마무리하는 그의 태도는 온전히 자신만을 위한 여행이라기 보다 타인과의 소통을 위한 여행을 바라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의 발자취는 자신의 기억 저편에 남아 있는 과거의 자신과, 새로운 사람들을 통해 회상하게 되면 가족들을 만나기 위한 여행이다. 그럼 무엇을 원하는가.

 

중요한 점은 무엇을 원하느냐가 아니다. 표면적으로는 여행을 통해 답장을 받는 것을 원하지만, 실상 그가 바라는 것은 자기와의 대화이며 가족과의 대화이며 다른 사람과의 대화이다. 편지를 대화가 아니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편지를 쓰는 사람과 그 편지를 읽는 사람과의 대화임이 분명하며, 그것을 통해 우리는 스스로를 확인하고 다른 사람의 존재를 느끼게 된다.

 

책을 읽으면서 흥미로운 소재와 기행문식의 글쓰기를 통해 우리가 살아가는 삶도 이와 같은게 아닐까 싶었다. 어차피 우리는 각자의 길을 걸으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때로 함께 걷다가 때로 헤어지기도 하는 관계를 형성하며 살아간다. 그 가운데 자신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기도 하고, 자신을 오해한 부분을 보기도 한다. 글 속의 주인공처럼 요즘에는 애완동물을 삶의 반려자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그렇게 서로가 어울려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아무도 편지하지 않았다는 오해는 결국 우리 자신이 다른 사람을 신뢰하지 않으면서 만들어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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