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에겐 남자가 필요해
한경혜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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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한 사람들의 대답은 왜 이렇게 천편일률적인지 모르겠어. '결혼은요?'하고 물으면 '실패했어요.' 그러는 거야. 도저히 같이 살 수 없어서 헤어진 것을 왜 실패했다고 말하는지 난 이해하기 싫어. 이혼하지 않고 사는게 오히려 실패작이라는 걸 이혼한 사람들은 알 거야. 그런데도 실패했다고 대답하는 거. 그건 세상이 만들어놓은 편견 때문 아니겠어? 불공평한 거지. 잘못된 결혼을 하는 사람에게 결혼이라는 단어에 매혹되어 '축하해!'라고 말하는 건 왜 당연하지 않은 거지? 난 축하받고 싶어. 내 이혼에 대해."

p.29

 

 타인과의 약속이란 지켜지지 않을 때가 더 많기는 하다. 약속이란 상관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행위다. 상관없는 타인들 사이에선 약속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 타인이란 다시는 만날 일이 없는 사람들이고 그 사람들 사이에서 우연하게 빚어진 약속이란 지키지 않아도 무방한 게 저간의 태도이긴 했다.

 지현과 수다를 떠는 사이에 나는 사내의 얼굴조차 잊어버렸다. 그러니 약속이란 애초에 있지도 않은 것처럼 다뤄지는 게 무리가 아니다.

pp.33~34

 

 지나고 보면 다 지나가게 되어 있는 그저 그런 일인 것을 그때마다 호들갑스럽게 큰 일로 겪어내다 보면 내 심장이 불쌍하고 내 머리가 불쌍해진다.

 담담하게, 있어 왔던 일처럼 행동하는 것이 나를 위해 좋다. 나는 풍랑을 만나는 순간마다 이보다 더 큰 풍랑이 있다고 다음을 기다린다. 작든 크든 풍랑을 만날 때마다 이번이 마지막 풍랑이야라고 달려들어 최후의 힘까지 끌어낼 생각이 없다. 진을 빼면서 살고 싶지 않다는 뜻이다.

p.200

 

내 인생이 내 것이라고 해서 함부로 써선 안 되는데.... 나는 너무 함부로 쓰는 것 같다. 내 생에게 미안하다.

p.225

 

 

한경혜, <엄마에겐 남자가 필요해> 中

 

 

+) 열살의 태극이가 보기에 이혼한 엄마에게 필요한 것은 '남자친구'라고 생각한다. 자신에게도 여자 친구가 있는데 엄마에게도 당연히 남자친구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다가 여자 친구와의 오해로 헤어지게 되면서, 엄마의 절친 지현이 아줌마가 사랑때문에 죽게 되는 것을 보면서, 태극이는 엄마가 결혼이 아니라 연애만 하길 바라고 남자친구보다 자신에게 더 관심을 갖길 바란다.

 

이 소설은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것처럼 재미있는데, 그것은 어린 아이의 시선과 엄마의 시선이 교차하면서 쓰여졌기에 훨씬 더 잘 드러난다. 열 살의 태극이가 볼 때 사랑은 솔직한 것만으로 부족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혼한 엄마가 볼 때 연애의 끝이 결혼인지에 대해서 남자친구와 생각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다. 두 사람은 사랑을 하며 기뻐하기도 하지만, 상처를 받기도 한다.

 

그러면서 주고 받는 대화는 '사랑하면서 이별하면서 가슴 아파하는 것은 지금 보다 더 성장하기 위해서라고, 어른이 되기 위해서라고' 이야기를 나눈다. 어린 태극이를 이해시키는 엄마의 말과 행동이 현명하다고 생각된다. 책을 읽으면서 여느 장편 소설보다 좋은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문학상을 받은 수많은 사람들에 뒤지지 않을, 작품이라는 느낌이다.

 

청소년들이 읽어도, 어른들이 읽어도 무난한 소설이다. 사랑에 대해서, 결혼에 대해서, 그리고 이별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무엇보다 생에 솔직한 여자의 발언들에 공감하고 또 공감한다. 엄마이기에 앞서 여자로서 고민하는 그녀의 입장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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