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남자 - 제138회 나오키 상 수상작
사쿠라바 가즈키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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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무 오래도록 함께 지낸 탓인지 나와 내 남자는 지금까지 대화라는 것을 별로 하지 않았다. 호기심과 흥분으로 충만했던 좋은 시절은 6, 7년 전에 이미 끝나 버렸다. 남은 것은 그저 집요하기만 한 애정 같은 것뿐, 이 사람밖에 없다는 어떤 신앙 같은 확신. 하지만 믿는 신도 의지할 가족도 없는 내게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었다. 언제부터인가 그를 믿고 의지하고, 그리고 떨어질 수 없게 되었다.

 저녁나절의 가로수 같은 비가 내리는데도 오가는 사람들로 넘실거렸다. 알콩달콩 속삭이는 남녀와 몇 번이나 스쳐 지난다. 이 가운데 과연 얼마나, 지금 함께 있는 사람을 '이 사람밖에 없다'고 믿고 있을까.

pp.10~11

 

"'그것'은, 살인자는, 사회적인 존재인 우리들 속에 숨어 살고 있어. 자신을 위해서 태연하게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그런 인간이. 겉보기는 어엿한 인간이지만, 한 껍질 벗겨 내면 돼지 같은 인간이지. 자신을 위해서만 살고, 자신과 자신의 육친만 사랑하는 이기적이고 반사회적인, 양심조차 없는 괴물이지. 평소에는 조용하고 아주 선량한 모습을 하고 있지만, 무슨 일이 생기면 가면을 벗어던지고 본래 얼굴을 드러내. 내 눈은 '그것'을 가려낼 수 있어."

p.177

 

 

사쿠라바 가즈키, <내 남자> 中

 

 

+) 과연 '내 것'이라는 소유욕을 사람에게 드러낼 수 있는 것일까. 나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만, 작가는 나와 다른 가 보다. 작가는 마치 '올드보이'의 한 장면이 연상되듯, 이루어질 수 없는 남녀의 만남을 당차게 서술하고 있는데 이는 반사회적이고 비현실적이다. 과연 현실에서 이런 관계가 성립할 수 있을까. 파격적인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소설은 흥미롭게 서술되었다. 현재에서 과거로 올라가는 서술은 인물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 일으키며 신비감을 더해가기 때문이다.

 

이 작품이 작년에 나오키상을 수상했다는 것이 꽤 놀랍다. 어찌보면 인간의 가장 사악하고 섬뜩한 면모를 주목하고 있는 작품인데, 아무리 잘 쓰여졌다하더라도 보수적인 사회에서 납득하기 힘든 작품이었을텐데. 평론가들의 평을 보니 '연애 소설' 혹은 '사랑'이라는 단어를 사용 하고 있었다. 글쎄, 과연 이 소설이 그렇게 해석될 수 있을까.

 

나는 이 작품 속 남녀가 인간에 대한 애정이 광적인 사람들이라 생각했다. 여주인공 '하나'는 어렸을 때 '준고'를 만났기에 올바른 이성관 형성이 불가능했고, 또한 '준고'는 자기가 간절히 원하는 모성으로 하나를 받아들였다. 그게 어떻게 남녀간의 사랑일까. 오히려 나는 그들의 시작은 사람에 대한 극단적인 그리움에서(이를테면 준고가 엄마를 그리워하고, 하나가 아빠에 대한 애정이 있었듯이) 비롯되었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그 관계가 남녀사이의 애정으로 변모한 것이다. 물론 그것도 주인공들의 착각이라 말하고 싶다. 사랑이라고.

 

그러니까 결국 내 남자,라는 말은 남녀만의 애정으로 표현할 수 없는 말이라 생각된다. 인간에 대한 소유욕, 그것에서 시작되지 않았을까. 아무튼 꽤 파격적인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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