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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섬에 내가 있었네 (양장) - 故 김영갑 선생 2주기 추모 특별 애장판
김영갑 지음 / 휴먼앤북스(Human&Books) / 2007년 5월
평점 :
절판
모두에게 인정받기보다는 나 자신에게 인정받는 게 우선이다. 나 자신이 흡족할 수 있는 그 무엇을 느끼고 표현할 때까지는 사진으로 밥벌이하기 위해 여기저기 기웃거리지 않으리라고 마음을 다잡는다. 다른 사람들은 속일 수 있어도 나 자신을 속일 수는 없기에 늘 자신에게 진실하려 했다.
p.37
순간순간 다가오는 고통을 극복하지 못해 이 길을 포기하고 다른 무엇을 선택한다 해도 그 나름의 고통이 뒤따를 것이다. 다른 일을 선택해 환경이 변한다 해도, 나는 나이기에 지금 겪고 있는 마음의 혼란을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지금 여기에서 이 물음에 답을 얻지 못한다면 어디를 가나 방황하고 절망하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피하기보다는 정면으로 돌파해야 한다. 그것이 어떤 것이든 분명 끝은 있을 것이다.
사진에만 매달리다 보니 해를 거듭할수록 나를 이해해주던 사람들과도 멀어져갔다. 그래도 바느질에 열중하다 보면 혼자라는 사실을 잊을 수 있어서 좋다.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을 달래야 할 때는 바느질감부터 찾는다. 울적한 날에는 바느질이 최고다.
pp.64~65
마라도는 사방을 둘러보아도 바다다. 물고기는 바다를 떠나 살지 못한다. 사람은 땅을 떠나 행복할 수 없다. 자연은 말없이 가르친다. 부드러운 것이 강한 것을 이긴다. 바위틈에 솟아나는 샘물을 보아라. 굳은 땅과 딱딱한 껍질을 뚫고 여린 새싹이 돋아나는 것을 보아라. 살아 꿈틀거리는 망망대해를 보아라. 빗방울이 모여 개울이 되고 강이 되고 바다가 된다. 자연이 들려주는 소식에 귀 기울이면 삶이 보이고 세상이 보이고 내가 보인다. 이제 눈을 감고 자연의 소리를 들어라.
p.157
김영갑, <그 섬에 내가 있었네> 中
+) 홀로 제주도에서 살아가던 사진작가가 루게릭 병에 걸려 그 생을 마감한다. 그는 자신의 삶에 만족했을까. 이 책을 읽으면서 혼자만의 시간에 익숙한 한 사람을 보았다. 그는 사진을 찍는 사람으로 평생 그것을 업으로 생각하며 살았다. 사진을 찍는 것 외에 다른 어떤 것에도 욕심이 없었다. 속세와의 인연을 끊고 사는 스님들처럼, 그는 자신의 인연들과 관계를 끊고 제주도에 거주하며 오로지 사진만 찍으며 살았다.
그에게 죽음에 대한 예고는 어떻게 들렸을까. 나는 그가 스스로의 모습을 부끄러워하지 않았기를 간절히 바란다. 자신이 선택한 자연으로의 품이 왜 부끄러운가. 속세의 시선에서 궁핍하게 보는 삶일지라도 스스로 만족하면 되는게 아닌가. 물론 나라면 그곳에서 좀더 편안한 삶을 살기 위해 발버둥쳤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부족하게 살아도 사진만 있으면 되는 사람이었다. 그 점이 무척이나 존경스럽다.
이제 그는 떠나고 '두모악'이라는 갤러리만 남았다. 두모악은 한라산의 옛이름으로 제주도에 있는 김영갑 사진 갤러리를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그는 사진에 이름을 달지 않는다. 그것은 그 이름이 사진을 제약하기 때문인데, 어쩌면 그런 시선이 그가 살아온 삶을 보여주는 게 아닐까. 그에게 속박, 억압, 제약은 어울리지 않는다. 그는 스스로에게 자유를 선물한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