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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오 금학도 - 이외수 오감소설 '신비'편
이외수 지음 / 해냄 / 2008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창자란 길들이기 마련이라고 했다. 많이 먹는다고 반드시 몸이 건강해지는 것이 아니야. 십장생에 들어가는 거북이나 두루미도 아주 조금밖에는 먹지 않는다. 창자를 비워본 적이 없는 사람은 마음을 비우기도 그만큼 어렵다고 했다. 네 할아버지께서 하신 말씀이야."
p.60
그는 소설가를 농사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영혼의 낱말들로 원고지라는 이름의 전답에다 깨우침의 씨를 뿌리는 농사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때로는 거름 대신 살과 뼈를 고랑마다 깎아 넣고 때로는 농약 대신 피와 눈물을 씨앗마다 적셔주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소설은 문학이며 문학은 예술이라는 사실을 그는 결코 망각하려 들지 않았다. 예술은 손끝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하는 것이라는 말에 그는 전적으로 동의하고 있었다. 예술은 이해함으로써 접근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 감동받음으로써 합일될 수 있는 영역이었다.
p.266
낮은 자들의 인생에는 고통과 슬픔이 항시 따르는 법이라네. 허나 그 때문에 인생은 더욱 아름다워지는 법이지. 세상만사가 새옹지마격이라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는 법, 슬픔과 고통으로부터 도망칠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들도 어차피 그대가 껴안아야 할 그대 자신의 몫이라면 은혜처럼 생각하고 받을 일이네.
p.277
"너 하나의 마음이 탁해지면 온 우주가 탁해지는 법이니라."
p.295
이외수, <벽오금학도> 中
+) 이 소설은 신선의 세계를 넘나든 한 소년의 이야기를 큰 틀로, 그가 그림 너머의 세계로 다시 돌아가기 위해 속세를 떠돌며 만나는 여러 인물들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당대의 거짓과 위선을 지닌 사람들을 제시하며 그들과 대조적으로 진실을 주장하는 사람들을 부각시킨다. 진실이 오히려 거짓이 되는 세상, 아마도 그건 현재의 모습이 아니겠는가.
물질적으로, 그리고 정신적으로 거짓에 찌든 세상의 면모를 압축하여 제시하고 있다. 그렇다면 신선의 세계로 건너가는 소년의 태도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현실도피는 아닐테고, 새로운 세계의 씨앗일진대. 중요한 것은 그가 아니라 그곳에 남겨진 노승과 어린 소년이다. 그들이 다시 남아 있는 세계를 살게 되겠지.
물론 환타지 비슷하게 글을 가볍게 끌고 가는 분위기는 있었으나 설명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명확히 드러나지 않았다는 생각이다. 전체적으로 조금 산만했다고 할까. 이외수의 문장은 깔끔했으나 구성이 치밀하지 못하여 제시한 인물들이 갑자기 사라져버리거나 그들이 왜 나왔을까에 대해 의문을 갖게 만들었다. 이외수의 최근 장편으로 다른 소설을 찾아 읽어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