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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에 꼭 하루뿐일 특별한 날
전경린 지음 / 문학동네 / 1999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그러나 이제는 다르다. 뭐라고 말하기는 애매하지만 굳이 말하자면 이런 것이다. 효경의 부재. 말하자면 효경이 내게서 없어진 것이다. 그것은 효경의 냄새가 싫어지면서 시작되었다. 그가 다가오면 나의 뇌는 그의 냄새에 무감각해지기 위해 긴장한다. 나의 뇌가 무감각 상태에 이르면 그가 내 곁에서 뭐라고 말하고 있다 해도 소용이 없었다. 중량감도 부피감도 울림도 없는 부재의 현존일 뿐이었다. 그리고 감상도 많이 휘발되었다. 점점 건조하고 황폐해지고 냉소적이 되는 기분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그때를 '나의 가장 행복했던 때'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진실과 상관없이 아직 찢어지지 않은 꿈의 고치 속에서 자족하고 있었던 그 때. 다 지난 일이 된 기분이었다.
p.66
"고문이라도 당했나요?"
"청춘은 고문이죠. 나도 네놈들만큼 독하고 강하다는 표지. 남자애들은 얼굴이나 손이나 피부가 곱게 생긴 녀석들을 우습게 알죠. 녀석들 앞에서 손등에 가위를 박은 뒤로는 누구도 더이상 건드리지 않았어요. 그리고 두 달이 흐르자 나도 모르게 무림파의 실세가 되었죠."
pp.74~75
"....... 당신은 그렇게 강하지가 않아. 강하다면, 남편 일에 그렇게까지 크게 상처를 입지 않았을 거야. 하지만 이제부턴 강해지기를 바래. 강하다는 건 이를 악물고 세상을 이긴다는 것이 아니라 세상과 상관없이, 어떤 경우에도 행복하다는 거야. 아무 곳에도 뿌리내리지 않고 진흙 한 점 묻히지 않고 피어나는 물 위의 꽃처럼."
p.243
전경린, <내 생에 꼭 하루뿐일 특별한 날> 中
+) '강하다는 건 세상과 상관없이 어떤 경우에도 행복하다는 거야.'라는 남자의 말이 머릿속에 맴돌던 소설이었다. 내 기억에 이 파란색 표지의 소설을 처음 접했던 것은 아마도 책이 막 시중에 나왔을 1999년 일 것이다. 그런데 그때 나는 이 책의 앞부분을 훑어 본 후 전경린이란 소설가는 소설을 참 건조하게 쓰는구나 판단해서 읽지 않았다. 그리고 꽤 오랜 시간이 흘러 문득 전경린이란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내가 읽어보지도 않고 마음대로 판단했던 작가. 이 소설을 읽고 난 전경린에게 갖고 있던 그간의 편견을 깨기로 했다.
이 소설에서는 평온한 한 가정에 '바람'이 불어오면서 폭풍우에 떠밀려 산산이 깨어진 가족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그 시작은 남편이었고, 그것을 이어간 사람은 아내였다. 여자의 배신감이 남자의 배신감으로 넘어가면서 난 이기적인 인물 군상을 보게 되었다. 자신이 하면 실수고, 상대가 하면 죄악이 되는 것. 그러나 여자는 스스로에게 자신이 하고 있는 것이 불륜이 아니라 사랑이라 생각한다. 어쩌면 여자의 남편이 더 괴로웠던 것이 여자의 그런 마음 때문이 아니었을까.
여자가 사랑한 남자는 남녀관계를 단순한 게임으로 받아들인다. 사랑이라는 것은 집착을 낳게 되므로 애초부터 사랑을 거부하는 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그들의 게임은 '사랑해'라고 말하는 순간 끝나는 규칙이 정해진 후 아슬아슬하게 시작된다.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작가가 여성의 심리를 조심스럽지만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에 놀라웠다. 그것은 불륜에서 머무는 감정이 아니라 여자로서 흔들리는 내면의 구도를 섬세하게 그려낸 것이었다.
결말로 갈수록 어색한 구성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읽는 내내 지루하지 않고 흥미로운 소설이었다. 무엇보다 과거의 내가 생각했던 건조한 문체가 아니라 오히려 장중한 느낌과 감정에 푹 젖어 있는 문체였다. 꼭 하루뿐인,이 아니라 꼭 하루뿐일 특별한 날을 상상하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도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