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의 알
무라야마 유카 지음, 양윤옥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6년 9월
평점 :
품절


"그런 건 싫어. 내가 조르니까 만나자고 하는 거, 그건 진짜 최악이야. 사정사정해서 겨우 그런 말이나 얻어듣는 나도 진짜 최악이고. 그리고 또 한 가지, 네가 여자 마음이란 걸 도통 모르는 거 같아서 한 가지 가르쳐주겠는데, 앞으로 어떤 여자가 다른 사람하고 자기하고 어느 쪽이 더 예쁘냐고 물어보면 거짓말이라도 좋으니까 그 여자라고 말해줘. 알겠니? 내가 말하고 싶은 건 그것뿐이야. 한동안 전화 안 할 거니까 그런 줄 알아. 네네, 마음 껏, 실컷, 공부하시죠. 자, 그럼."
 나는 느릿느릿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지금 바로 다시 전화를 해줘야 하는 건지도 모른다. 나츠키는 하나도 나쁠 거 없고 틀린 말을 한 것도 아니었다. 나쁜 건 백 퍼센트 내 쪽이었다. 게다가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나츠키 쪽에서도 지금쯤 내가 사과해오기를 전화기 앞에서 숨을 죽이고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그 모습이 눈앞에 선히 보이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결국 전화를 하지 않았다.

pp.84~85

 

"아유타, 좀 더 아무 생각 없이 무턱대고, 자기 좋을 대로 해봐. 젊은 나이에 너무 그렇게 냉정하고 철 든 사람 노릇은 이제 그만해. 아유타가 지금 보다 좀 더 자기 멋대로, 막무가내로 행동한다고 해도 지금 아유타가 염려하는 것만큼 힘들어질 일은 없어. 어머님도 그렇고 아버님도 그렇고 어느 누구도. 인간이란 아유타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강인한 존재야.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고 있어."

p.93

 

인간이란 압력솥과도 같은 것이다. 증기가 빠져나갈 구멍이 없으면 압력솥은 한계에 이르러 폭발하고 만다. 사람은 어떻게 되는가. 미쳐버리고 만다. 어딘가에서 슬픔이나 고통이라는 이름의 증기를 빼주지 않으면 안 된다. 울음이라는 행위는 인간에게는 그런 구멍 같은 작용을 하는 것이다.

p.132

 

무라야마 유카, <천사의 알> 中

 

 

+) 자주 식사를 했고, 같이 어울려 놀던 여학생을 여자 친구인가보다 하고 지냈던 아유타. 그에게 그녀의 언니(하루히)가 첫사랑으로 다가온다. 우연히 만나서 서서히 마음에 담아두는 관계. 만원 지하철 안에서 어쩐지 그녀를 보호해주고 싶었던 아유타. 그렇게 아유타의 첫사랑은 시작된다. 이 소설은 한편의 일본 영화를 보는 것처럼 잔잔했는데, 의외의 파격적인 결말이 인상적인 작품이다.

 

사랑을 하는 것은 무엇인지, 사랑이란 감정을 어떻게 느끼게 되는 것인지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해주는 소설이다. 아유타의 모습에 매력을 느끼는 하루히를 보면서, 어쩌면 사람이 사람에게 관심을 갖는 것이 나이나 시간에 영향을 받지 않고 온전히 마음의 기억으로만 확인하는게 아닐까 생각했다. 머리보다 가슴이 먼저 앞서는 사이, 그 두 사람이 모습은 충분히 그러했다. 아름다운 사랑이지만 의외의 결말에 가슴이 아프다. 첫사랑의 추억치고는 너무 아픈 기억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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