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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과 뱀과 짧은 이야기 ㅣ 랜덤 시선 21
장옥관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걷는다는 것'
길에도 등뼈가 있었구나
차도로 다닐 때는 몰랐던
길의 등뼈
인도 한가운데 우툴두툴 뼈마디
샛노랗게 뻗어 있다
등뼈를 밟고
저기 저 사람 더듬더듬 걸음을 만들어내고 있다
밑창이 들릴 때마다 나타나는
생고무 혓바닥
거기까지 가기 위해선
남김없이 일일이 다 핥아야 한다
비칠, 대낮의 허리가 시큰거린다
온몸으로 핥아야 할 시린 뼈마디
내 등짝에도 숨어 있다
장옥관, <달과 뱀과 짦은 이야기> 中
+) 나는 가끔 내가 생각하는 시가 무엇일지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해보곤 한다. 이번 시집을 읽으면서도 또 그런 생각을 했다. 도대체 시가 무엇일까. 장옥관 시인은 시쓰기에 들어서는 첫 단계를 '관찰'로 선택한다. 일단 시인의 눈에 포착된 것에서 자신의 과거 혹은 그 순간의 감정을 입혀 시로 형상화해낸다. 그렇다면 감정은 또 시에서 어떤 의미가 있을까.
나는 자꾸 아쉬움이 남는다. 그의 시에는 그만의 사유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 어쩌면 사유를 끌어내는, 그러니까 사유를 표현해내는 힘이 부족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의 시는 정형화된 틀을 갖고 있고 그것에서 벗어나려면 무언가 파괴하고 깨드려야 할 것 같다. 이쯤에서 드는 생각이 또 이것이다. 그렇다면 시란 무엇인가.
아마도 장옥관 시인이 생각하는 시는 그의 시집에 실린 작품들일 것이고, 나 또한 '걷는다는 것'을 참 좋은 시라고 말하고 싶다. 그러나 그밖의 다른 작품들에는 관찰의 힘에 덧입혀져야 할 시인만의 상상 혹은 사유가 잘 드러나지 않았다. 그런데 내가 잘 헛갈리는 것은 이 시인이 분명 그것을 모를리 없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그가 생각하는 시와, 내가 생각하는 시의 차이에 문제의 핵심이 있다.
평생의 고민, 시. 시는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