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감상적 킬러의 고백
루이스 세풀베다 지음, 정창 옮김 / 열린책들 / 2001년 3월
평점 :
품절
그날은 기분이 좋지 않았다. 시작부터 좋지 않았다. 그런 날은 미신이나 징크스를 믿지 않더라도, 아니 동그라미가 여섯 개나 찍히고 세금이 감면된 액수의 일거리가 주어진다 하더라도 차라리 일을 받지 않고 쉬는 게 나았을 것이다. 아무튼 그날은 기분이 좋지 않났다.
p.9 -[감상적 킬러의 고백]
"당신은 신도, 윤리도, 엘 판타날의 여신도 될 수 없소. 오르넬라 양, 당신 역시 부르주아를 죽도록 증오하는 또 하나의 부르주아일 뿐이니까. 나는 사랑하는 사람을 죽인 자들에게 복수하고 말겠다는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소. 하지만 당신은 결정적인 카드 패를 집어들지 않았던 거요. 왜? 이른바 당신 같은 부르주아들은 결코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용기가 없기 때문이오. 그들은 군불 속의 밤을 꺼낼 때마다 다른 사람들의 손을 이용한다, 그 말이오. 그것도 아주 철두철미하게. 자, 말하시오. 그 인디오는 어디 있소?"
p.174 -[악어]
루이스 세풀베다, <감상적 킬러의 고백> 中
+) '루이스 세풀베다'의 <연애 소설을 읽는 노인>을 읽은지 얼마되지 않았다. 그건 환경보호에 관한 인류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소설이었는데, 이건 마치 추리영화를 보는 것처럼 즐거운 소설이었다. 감상적 킬러가 간직한 목소리는 생각보다 귀여운 구석이 많았는데, 사람을 죽이는 킬러 답지 않게 감상적이라는 점이 매우 특이한만큼 매력적이었다. 단숨에 두 편의 소설을 읽고 그의 작품을 영화화한다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했다. 아마도 벌써 만들어지진 않았을까. 흥미로우면서도 귀여운 추리소설을 읽은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