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술집, 외상은 어림없지
알랭 마방쿠 지음, 이세진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4월
평점 :
품절


사장은 나를 약간 질책하고는 이어서 말하기를, 그런 게 다 인생이라고, 언젠가는 잘나가다가 언젠가는 또 벽에 부딪히는 거라고, 중요한 건 똑바로 서서 바람이 부는 대로 머리카락만 날리는 거라고, 중요한 건 잃어버린 낙원의 한 형태인 이 지상에서의 삶에 최선을 다해 적응하는거라고 했다, 나는 도대체 어떤 아프리카 시인이 그런 소리를 했는지 모르겠다, 아마 운문을 베껴 쓰는 재주만 뛰어난 요즘의 재능 없는 시인들, 어찌할 바를 모르는 아류 시인 중 한 녀석이리라,

p.176

 

지식인이라는 것들은 항상 그 모양이다, 입만 나불거릴 줄 알았지, 나중에 보면 구체적인 대안은 하나도 나오는 게 없다, 그러니까 항상 논쟁에 대한 논쟁만 제시하고, 논쟁은 끝이 없다, 그 다음에는 누가 이랬네, 누가 저랬네, 누가 그걸 예견했네, 하면서 다른 지식인들의 말만 인용하기 바쁘다. 배꼽 문지르는 소리만 하고, 남들은 다 멍청이, 장님 취급한다, 흡사 철학을 안 하면 살아갈 수도 없다는 듯이 말이다, 문제는 이러한 가짜 지식인들이 삶이 뭔지도 모르면서 철학을 한다는 데 있다, 그들은 인생을 모른다, 가엾은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을 무시한 채 인생은 잘만 흘러가는데 말이다. 지식인들은 자기네들끼리 축하를 한다, 희한한 것은, 가짜 지식인들은 정장, 둥근 안경테, 넥타이를 몹시 좋아한다는 것이다,

p.183

 

나는 비록 지리학이나 문학을 좀 더 좋아하기는 했어도 곱셈 역시 항상 좋아했다, 사실 내가 학업을 더 했어도 문학 쪽으로 더 발전하지 못했을 것 같다, 문학은 공부해 봤자 어떤 목표지점이 없다,

p.202

 

 

알랭 마방쿠, <아프리카 술집, 외상은 어림없지> 中

 

 

+) 형식 파괴적인 소설이었다. 단락 구분은 물론 마침표도 제대로 찍혀있지 않았고 모든 문장은 쉼표로 이어져 있었다. 술집 한 가운데에서 술에 취한 사람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는 서술자의 목소리로 쓰여진 이 책은 희안하게도 쉽게 읽히는 글은 아니었다. 그것은 형식적인 부분 때문이 아니라 이야기의 흐름이 단편화 되어 있기 때문에 그렇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천연덕스럽게 지식인을 비꼬는 서술자의 목소리가 매우 마음에 들었는데, 그 당당한 태도가 정말 어리석고 용렬한 지식인을 비웃기에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그런 사람들을 가짜 지식인이라고 칭했는데 오히려 그의 사유구조는 가짜 지식인의 반대편에 위치한 진짜 지식인처럼 보였다. 아니, 지식인이란 단어 따위가 필요치 않은 그저 한 사람으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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