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가벼운 깃털 하나 - 공지영 에세이
공지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09년 2월
평점 :
품절


"혼자 됐다면서? 이혼 횟수가 뭐가 중요해. 중요한 건 어서 다시 사랑을 해야 한다는 거야........ 겁쟁이들은 결코 사랑을 얻지 못해. 무엇이 그리 겁날 게 있어? 까짓것 상처밖에 더 받겠느냐고. 그리고 인생에 상처도 없으면 뭔 재미로 사냐 말이야."

p.64

 

오죽하면 인간에게 가장 오래된 두 가지 불치병이 있는데 하나가 어제 병이고, 다른 하나가 내일 병이라고 하고 싶다. 둘 다의 공통점은 아시겠지만 내 맘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마음먹기 나름이라는 말을 젊을 때는 그렇게 싫어했고, 지금도 젊을 때는 그러는게 맞다고 생각하지만 역시 나이가 드니까 마음먹기 나름이라는 말이 그렇게 와 닿을 수가 없다.

p.84

 

상처받고 있다는 사실이 그만큼 살아 있다는 징표이기도 하다는 생각을 하면, 싫지만 하는 수 없다, 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상처를 딛고 그것을 껴안고 또 넘어서면 분명 다른 세계가 있기는 하다. 누군가의 말대로 상처는 내가 무엇에 집착하고 있는지를 정면으로 보여주는 거울이니까 말이다. 그리하여 상처를 버리기 위해 집착도 버리고 나면 상처가 줄어드는 만큼 그 자리에 들어서는 자유를 맛보기 시작하게 된다. 그것은 상처받은 사람들에게 내리는 신의 특별한 축복이 아닐까도 싶다.

p.171

 

- 그럼 싫어하는 사람은?

- 누구라고 꼭 집어 예를 들면 좀 너무하니까 부류를 들어 설명을 하면 이렇다. 아무것도 안 하고 푸념만 하고 있는 사람, 멋 안 내는 사람, 위선이 뭔지도 몰라 못 떠는 사람, 공손하게 존댓말하는 나에겐 불친절하고 반말 찍찍하는 아저씨들에겐 굽실거리는 종업원들이 정말 싫다.  요즘엔 특히나 제가 해야 하는 말이 무언지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 싫다.

p.251

 

공지영, <아주 가벼운 깃털 하나> 中

 

 

+) 최근에 공지영이 에세이를 많이 적어내는 것을 보며, 차라리 소설이나 시를 싫어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책이 훨씬 도움이 될 수도 있겠구나 싶다. 책을 읽으면서 킥킥 거리며 웃었는데, 공지영이 말했듯이 가벼운 웃음을 유발하는 이야기를 책으로 엮어낸 것이 맞는 것 같다. 무엇보다 술취한 아저씨가 집을 못찾는 이야기는 정말 압권이었다. 하하하,

 

그녀의 말대로 웃음은 만병통치약이다. 육체가 아파도, 마음이 아파도 일단 웃고 나면 한결 가벼워진다. 그래서 나도 마음이 좋지 않거나 할 때면 개그콘서트 같은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보거나, 유쾌하게 쓰여진 글들을 찾아 읽곤 한다. 이 에세이는 위로와 위안을 주었던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와 사뭇 다른 무게를 지닌 작품이다.

 

가볍게 웃고 넘길 수 있는 이야기들, 그러나 읽다보면 또 촌철살인의 시선이 있다. 나는 그게 공지영 작가의 매력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건 연륜이나 개인적인 체험에서 근원한 것이 아니다. 공지영이라는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공지영이라는 작가의 개성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무엇보다 그녀의 책을 읽을 때마다 어쩜 이렇게 나랑 똑같은 생각을 하는지 참 신기하다. 싫어하는 사람까지 정말 꼭 닮았다.

 

옆집 언니처럼 매우 친근감이 가는 작가다. 그만큼 대중적이라거나 통속적이라거나 하는 비난을 받기도 하지만 그건 문장의 힘을 간과한 사람들이 목소리라고 생각된다. 한 문장을 만들어내는데 얼마나 어려움이 많은지 알까. 그 한 문장 한 문장의 힘으로 지금의 그녀가 있다. 사람들이 다른만큼 모두 같은 평을 내릴 수는 없겠으나 문장, 글에 대해 너무 쉽게 말하지 않았으면 싶다.

 

하지만 이런 책을 공지영이 계속 출판하게 된다면 나도 심히 실망하게 되겠다. 문장의 힘을 함부로 사용하는 기분이 들테니까. 그래서 그녀의 인간적인 새 소설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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