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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빵 굽는 시간 - 제1회 문학동네신인작가상 수상작
조경란 지음 / 문학동네 / 1996년 8월
평점 :
어째서 대부분의 여자들은 중년이 되면 저렇게 아랫배가 늘어지고 온몸이 부풀어오르는 것일까.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자신의 몸뚱어리에 대해서조차 관대해진다는 것일까. 그러는 새에 스스로를 젊다고 내세우는 것이 어색해지고 자신 없어질 테지. 때때로 참혹한 기분이 들 수도 있을 것이다.
p.9
얘야, 그런 말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니다....... 죽음과 만나지 않은 고독이란 고독이라고 말할 수 없는 거란다.
죽음과 만나지 않은 고독, 심장을 찌르고 지나가는 말이었다. 어쩌면 그것이 죽음에 임박한 어머니가 전 생을 통해 얻어낸 결론이었는지도 몰랐다. 나는 오랫동안 그 말을 기억하고 싶었다.
p.33
"미련이 많은 여자에요. 당신. 미련이 많으면 인생이 고달퍼지는 법이죠."
p.94
"그래도 아주 죽는 것보닷 낫잖아요. 살아 있으면서 잃어버리는 게 낫잖아요. 잃어버리게 된 건 그대로 잊는 거에요. 당신 인생엔 아직 시작도 못한 시간이 남아 있다는 거 말예요......."
p.110
조경란, <식빵 굽는 시간> 中
+) 조경란은 한 해에 동아일보 신춘문예(1996년)과 문학동네 신인상을 동시에 수상한 작가이다. 능력도 있겠지만 운도 좋은 작가이다. 꽤 오랜만에 그녀의 초기작을 읽어보았는데, 침착한 문체는 처음부터 시작되었구나 싶었다. 이렇듯 신인의 문체가 안정적일 수 있다는 점은 분명 오랜 시간의 숙련기간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감정을 절제하며 구사하는 능력은 탁월하다. 이 글에서도 이모인 줄 알았던 사람이 실제 친어머니이며, 그래서 자신의 어머니가 자신을 외면해왔다는 것을 알게 된 여자의 이야기이다. 그 스토리 외에 빵을 굽는 여자의 일상이 겹쳐지는데 지루하지 않은 소설이다.
빵을 만드는 과정과 각각의 빵이 갖고 있는 속성을 인물과 사건에 연결시켜 서술하고 있는 점은 소설의 흥미를 더해준다. 서사의 비밀에 출생의 비밀이라는 설정은 참신하진 않지만, 빵과 삶을 대응시키는 것은 당시에 참신했으리라 생각된다. 단순히 가족사의 측면을 벗어나서 나이 서른의 제빵 기술을 배우는 여자의 삶으로 돌아가서 소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비밀에 얽힌 가족사는 그녀의 생 일부에 불과하기에, 그녀에게 중심은 그녀 스스로를 알차게 만드는 것에서 출발하는 것이 좋다. 그건 불과 주인공만의 문제가 아니라 현재의 우리 모두에게 해당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