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칼의 노래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7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귀를 의심했다. 나는 임금이 가여웠고, 임금이 무서웠다. 가여움과 무서움이 같다는 것을 나는 알았다. 임금은 강한 신하의 힘으로 다른 강한 신하들을 죽여왔다.
p.64
망궐례를 올릴 때 나는 교지에 절했다.
....... 전하, 전하의 적들이 전하를 뵙기를 고대하고 있나이다. 신은 결단코 전하의 적들을 전하에게 보내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 적들은 전하의 적이 아니라 신의 적인 까닭입니다.
p.82
배는 생선과도 같고 사람의 몸과도 같다. 물속을 긁어서 밀쳐 내야 나아갈 수 있지만, 물이 밀어주어야만 물을 따라 나아갈 수 있다. 싸움은 세상과 맞서는 몸의 일이다. 몸이 물에 포개져야만 나아가고 물러서고 돌아서고 펼치고 오므릴 수가 있고, 몸이 칼에 포개져야만 베고 찌를 수가 있다. 배와 몸과 칼과 생선이 다르지 않다.
pp.156~157
삶은 집중 속에 있는 것도 아니었고 분산 속에 있는 것도 아니었다. 모르기는 하되, 삶은 그 전환 속에 있을 것이었다.
p.243
김훈, <칼의 노래> 中
+) 이 책은 '이순신'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으나 '장군'으로서의 이순신에 주목하기 보다 '이순신'이라는 한 사람에 주목하여 서술한다. 1인칭 주인공 시점을 통하여 전쟁의 핵심에 서 있는 수군통제사의 입장, 임금에게 버림받았다가 다시 나라의 위기에서 등용된 신하의 입장, 전쟁때문에 아들을 잃어버린 아비의 입장 등등 이순신 개인의 심리와 전쟁 상황을 동시에 그려낸다.
이는 공동체와 역사에 책임을 져야 할 위치에 선 자들이 지녀야 할 윤리, 사회 안에서 개인이 가질 수 있는 삶의 태도, 문(文)의 복잡함에 대별되는 무(武)의 단순미, 4백 년이라는 시간 속에서도 달라진 바 없는 한국 문화의 혼미한 정체성 등을 이야기 한다. 즉, 그 말은 과거에나 지금에나 어리석은 관리들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고, 그 아래에서 고통을 겪고 있는 불쌍한 백성들은 여전히 있다는 것에 대한 비판이다.
읽으면서 역사 속의 인물이 언급하는 대사가 이렇게 가슴에 와 닿다니, 솔직히 놀라웠다. 사람이 살아가는 방식은 그때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어려움에 봉착했을 때 그것을 어떻게 해결해가느냐 하는 것은 각자 개인의 몫이다. 처절하지만 강하게,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현명하게 살아간 그의 지혜에 마음이 뿌뜻해진다. 한 권이 꽤 두껍지만 읽는데 지루함은 전혀 없다. 가까이 다가가 손에 넣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