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게 온 소포 민음의 시 97
고두현 지음 / 민음사 / 200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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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사람들 산에 오르다'

 

 

오후에는 바람이

위쪽으로 불었다.

누가 돌아오는가 보다.

세상과의 톱질에서 지고

명퇴한 나무들이 올라오는지

바람 끝이 대패 같다.

 

그래 너도 한 번은

끝을 보아야지.

 

어깨를 짚고 다독이는 산.

잠시 땀을 말리는 동안에도

등줄기로 톱날자국들이 지나간다.

은사시나무 허리가 휘어지는가 싶더니

잘게 쓸린 뿌리들이 우수수 쏟아진다.

 

스스로 톱밥을 쌓는 산.

저도 언젠가는 남들처럼

당당하게 세상으로 나가고 싶은 것이다.

올라올 때보다

 

내려갈 때가 더 힘들다고

처음 입산 때

바위 틈에 사기 그릇 한 벌 감춰둔 것도

앞을 내다보고 한 일이다.

하지만 오늘은 먼 데서 온 나무들이

그를 위로한다. 여기 앉아 따뜻한

국물이나 한 그릇 하라고.

 

 

고두현, <늦게 온 소포> 中

 

 

+) 고두현의 시집에는 코끝을 찡하게 만드는 따뜻함이 있다. 모정에 대한 그리움, 자연의 풍요로움에 대한 그리움 등 그것은 시집 전체에 골고루 묻어있다. 화자는 작고 소박한 것을 사랑하는 사람이고 자연에 한 발 다가서는 사람이다. "믿을 수 있는 건 모두 / 하늘에 있고 / 아이들은 / 날 때부터 / 그렇게 배운다. / 사람보다는 / 사물에 더 자주 귀를 기울여라."([달과 아이들]) 사람과 사물, 그러니까 온 세상의 자연에 귀를 기울이는 것. 그것이 그가 배운 첫번째 삶의 법칙이다.

 

현존하는 세대가 넘어서야 할 벽은 다음 세기를 위한 행복하고 아름다운 꿈이다. 걷고 있는 수많은 '길' 중에서도 다음 세대가 이어갈 수 있는 튼튼한 '길'을 걷고자 한다. 그와중에 세상과의 몸싸움에서 상처 입은 영혼들을 다독이는 것이 그의 몫이다. 화자는 "온몸 뒤틀며 혼자 견딘 것이 / 흉터에 새 살 밀어올리는 그것 / 얼룩의 힘"이 "나를 키운 것"이라는 깨달음을 가슴 깊이 새기고 있다. ([산감나무])

 

화자에게 화목한 가정은 곧 화목한 사회이다. 또한 그것이 곧 안분지족의 삶이리라. 어렵고 힘든 시기를 어머니의 따뜻한 품을 기억하며 견뎌가는 것. 코끝 찡해지는 따뜻함으로 바로 서는 것. 그런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소박한 희망을 제시하는 시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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