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의 바다 - 제12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정한아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꿈꿔왔던 것에 가까이 가본 적 있어요? 그건 사실 끔찍하리만치 실망스러운 일이에요. 희미하게 반짝거렸던 것들이 주름과 악취로 번들거리면서 또렷하게 다가온다면 누군들 절망하지 않겠어요. 세상은 언제나 내가 그린 그림보다 멋이 떨어지죠. 현실이 기대하는 것과 다르다는 것을 일찍 인정하지 않으면 사는 것은 상처의 연속일 거에요. 나중엔 꿈꿨던 일조차 머쓱해지고 말걸요.

p.7

 

엄마, 저는 그 모든 순간을 즐겼고 조금도 후회하지 않았어요. 이걸 위해서 희생했던 것들, 제가 저지른 실수와 오류들 말이에요. 사는 게 선택의 문제라면 저는 제 손에 있는 것만 바라보고 싶거든요.

p.11

 

"세상은 언제나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이야."

고모는 부드럽게 웃었다.

"생각처럼 나쁘지는 않은데 늘 우리의 밑그림을 넘어서니까 당황하고 불신하게 되는 거야. 이렇게 네가 나를 보러 와준 것처럼 기대 밖의 좋은 일도 있는 거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는 거고. 고모는 그걸 알기 때문에 세상에 빚진 것이 없어."

"그래서?"

"자유지."

p.145

 

 

정한아, <달의 바다> 中

 

 

+) 제 12회 문학동네소설상을 수상한 이 작품의 심사평은 틀이 잘 짜여 있다는 것이 공통된 점이었다. 작가가 제시한 구성에 맞게 내용을 잘 맞춰나간다는 말인데, 나는 그것에 적극 공감한다. 주인공의 고모가 쓴 편지와 신문 기자 시험에서 매번 떨어지는 취업재수생 주인공과 트렌스젠더를 꿈꾸는 '민'의 이야기가 골고루 분배되어 제시된다. 인물들의 정신적인 성장 과정을 차분히 나열한다. 또한 할머니가 고모를 바라보는 시선으로 주인공을 보듯, 할아버지는 고모를 바라보는 시선으로 주인공을 본다. 그와 같은 무게감이 작품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

 

이 작품에 드러나는 고모는 우주 비행사가 아님에도 어머니의 꿈을 위해, 또한 자신이 존재하는 현실 이상을 상상하며 우주 비행사인척 한다. 고모가 살고 있는 현실과 어머니가 희망하는 고모의 현실은 차이가 크다. '꿈'이라는 이름 아래 존재하는 그것은 희망이기도 하고 좌절이기도 하다. 할아버지가 말하는 안정적인 현실, "쟤도 뭐라도 좀 해야 하지 않겠냐"라는 그 '뭐'. 즉, 그것은 우리의 일상이며 지루한 삶의 궤적이다. 하지만 할머니의 현실은 꿈꾸는 이상이며 자신의 삶과 다른, 삶이다.

 

한 곳에 매여 반복적이고 기계적으로 사는 삶보다 더 넓은 곳에서 더 많은 사람들과 어울려 사는 것. 현재보다 나은 미래가 할머니의 머리에 있듯이, 그것이 희망이었듯이 고모는 할머니의 꿈을 지켜주고자 한다. 자신의 현실과 다른 이상을 꿈꾸는 것은 죄가 아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누구나 꿈꾸고 바랄 수 있다. 고모의 편지는 그 자체만은 전혀 거짓이 없다. 100% 진실이고 현실이다. 그러나 결국 그것은 현실에 있지 않는 가상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이란 그런 것이 아닐까. 현실 속의 이상을 꿈꾸는 것. 꿈꾸는 것 자체로 자유롭고 행복할 수 있는 것. 작가의 성실한 구성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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