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 짝퉁 라이프 - 2008 제32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고예나 지음 / 민음사 / 2008년 6월
평점 :
품절


책꽂이에서 <손자병법>을 꺼냈다. 책은 내게 먼저 말을 걸지 않는다. 내가 말을 걸고 싶을 때 책을 잡으면 된다. 작별을 할 때는 1초도 걸리지 않는다. 사람과 작별할 때는 상대방의 기분과 그 상황을 고려하여 인사해야 한다. 그러나 책은 내가 일방적으로 덮어 버리면 그만이다. 책은 내게 그 무엇도 강요하지 않고 그 어떤 압력도 가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내 머릿속에 무수한 말 풍선을 달아 준다. 나는 친한 사람을 곁에 두듯이 좋아하는 책을 가까이 한다. 나와 잘 통하는 사람은 아무리 같이 있어도 싫증 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봤던 책을 또 펼친다.

p.214

 

사실 나로선 어머니라는 사람이 없어도 이날 이때까지 그럭저럭 잘 살아왔다. 그러니 생긴 것이 오히려 불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좀 불편하면 어떤가. 살아온 인생보다 앞으로 살아갈 인생이 더 까마득하게 남았으니 적응하면 될 일이다. 내게 없었던 어머니라는 사람은 분명 또 다른 쓰임과 도움이 되어 줄 것이다. 진짜 어머니이고 아니고는 중요하지 않다. 피를 섞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말을 섞는 것이다.

p.242

 

반간계. 알고서도 속아 주는 것. 모르지만 속지 않는 것. 알지만 눈 감아 주는 것. 모르지만 아는 것. 적의 간첩은 자신이 반간으로 쓰이고 있다는 걸 알면서 모르는 척하는 것일까. 모르고도 알은체하는 것일까. 가짜가 진짜일까. 진짜가 가짜일까. 진실이 거짓말을 하는 세상이다. 세상이 만든 진실이 미워지면 너만의 가짜를 만들어라. 네가 원하는 그 상상이 진짜다. 네 진심이 깃든 상상으로 이 세상에 복수하라. 그러면 행복해질 것이다.

p.244

 

 

고예나, <마이 짝퉁 라이프> 中

 

 

+) '지독한 열등감'에 빠져지냈다는 작가의 말, '그 열등감은 숨이 막히도록 아름다운 것'이었다는 그녀의 말, 그리고 '그 열등감이 나를 이곳까지 데리고 왔다'는 그녀의 고백. 나는 소설을 읽으며 이런 그녀의 마음을 어느 정도 짐작했다. 작가가 <마이 짝퉁 라이프>에서 지적하고 싶었던 것은 진짜와 가짜 사이가 아니다. 실로 그녀가 주목하는 것은 '진심'이라는 단어이다. 진심이 진실을 만들어 내는 세상. 그것이 그녀가 꿈구는 곳이다.

 

남자에게 진심으로 다가섰다가 상처받은 주인공은 자신이 다시는 그런 사랑을 하지 못하리라 생각한다. 그렇기에 이성과 친구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Y의 고백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서로에게 상처를 주면서 두려워하는 것, 그것은 또다시 시작될 사랑의 상처에 대한 공포 때문이다. 지금껏 그녀에게 사랑은 진짜가 아니라 가짜로 존재했기 때문이다.

 

하룻밤 엔조이 상대를 즐기는 B가 진정 꿈꾸는 것은 연예인이다. 그래도 그녀는 원 나이트를 좋아하는 사람과는 절대 하지 않는다고 선언한다. 그들의 진심에 흠집을 내지 않고, 쉽게 잘 수 있는 여자로 보이고 싶지 않아서이다. 결국 B는 자신이 정말 원하는 것이 무언인지 알고 있으며, 자신이 원하는 사랑이 무엇인지 명확히 알고 있는 여자다.

 

그러니까 주인공 '진'은 R 처럼 남자 없이 안되는 친구도 있는 반면, B처럼 쿨하게 사는 듯 하면서도 자신의 꿈을 버리지 않는 친구도 있다. 또한 자기를 좋아하며 지켜주고 싶어하는 Y가 존재한다. 그녀의 삶에 가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 주위에는 어딘가에 숨겨진 진심이 보인다. 그것을 하나씩 발견하여 가는 삶, 그녀가 <손자병법>을 읽으면서 의지할 수 있고 기댈 수 있는 마음이 드는 것처럼 믿음직한 그런 진실과 진심. 작가가 바라는 것도 바로 그런 삶의 이면들을 발견해내는 인생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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