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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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관이란 무의식 중에 행하는 행동을 뜻한다. 폭력이 몸에 밴 사람은 폭력을 인식하지 못한다. 그리고 바로 그 '인식하지 못함'이 그가 속한 세계를 폭력적으로 만든다. 그런 세계에서는 제아무리 비폭력을 주장한다고 해도 현실적으로 그들의 몸은 폭력보다 비폭력을 더 불편해한다. 그걸 가리켜 현실감각이라고 부르는 것인지도 모른다.

p.102

 

나를 구한 건 "자기 자신이 되어라"라는 마지막 문장이었다. 인생은 자기 자신이 지배하는 것이다. 너의 인생을 누구에게도 맡기지 말라. 무엇보다도 네가 선출한 지도자에게는 맡기지 말라. 자기 자신이 되어라.

p.124

 

나는 행복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아. 행복을 찾기 위해 나는 온세상을 떠돌아다녔으니까. 거기가 환하다는 이유만으로 마당에서 잃어버린 바늘을 찾는 물라 나스루딘처럼. 찾아내는 순간, 그간의 모든 노력이 무가치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그 보물을. 찾아내는 순간, 나의 인생이 더없이 짧다는 사실만을 가르쳐줄 뿐인 그 보물을. 그리하여 내가 찾는 진정한 보물이란 이 세상에 없다는 사실만을 가르쳐줄 뿐인 그 보물을. 어떻게 된 일인지 내 소망이 녹아들었음에도 그 꿈이 내게는 슬펐다.

pp.214~215

 

우리는 인생을 두 번 사니까. 처음에는 실제로, 그 다음에는 회고담으로. 처음에는 어설프게. 그 다음에는 논리적으로. 우리가 아는 누군가의 삶이란 모두 이 두번째 회고담이다. 삶이란 우리가 살았던 게 아니라 기억하는 것이며 그 기억이란 다시 잘 설명하기 위한 기억이다.

p.384

 

 

김연수,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中

 

 

+) 이 책은 혼란스러운 시대 상황 속에서 한 젊은이의 방황과 꿈이 가족사와 얽혀 펼쳐지는 소설이다. 그러면서 그는 '정민'이란 여자친구를 만나면서 소년에서 남자로의 변화를 일으키고 내면적인 성장의 발걸음을 내딛는다. 작중화자는 1991년 여름 이른바 '5월투쟁'이 끝난 후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던 대학생 '나'이다. 하지만 '나'는 그 당시의 현실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인물이라기 보다 한 걸음 떨어져 있는 인물이다.

 

 작가는 역사적 사건들 사이에 얽허 있는 개인의 진실을 파고들어, 인간 본연의 내면을 솔직하게 이야기한다. 서술자('나')가 방북학생으로 독일에 가게 되었을 때 거기서 만난 인물들의 이야기가 작품 중반부터 같이 서술되고 있다. 살짝 지루한 감이 있지만 그것은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는 작업이기에 그럴 수 있다고 이해할 수 있다. 어찌되었든 나의 목소리를 빌어 한 인물의 정체성 찾기의 과정이 서술되어 있는 책이다.

 

나는 무엇보다 이 책을 과감히 시대적 혼란기에서 성장하는 한 개인의 성장소설(내면적 성장)이라 칭하고 싶다. 주인공 '나'가 깨달아가는 삶에 대한 진실, 사람에 대한 진심, 그리고 시대를 살아가는 용기가 무엇인지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서술자의 언급되로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을 목표로 살아간다면, 이 세상은 좀 더 진솔한 사회가 되지 않을까. 인류의 역사적인 의미와 인간 개인적인 의미 모두를 되새길 수 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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