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
김훈 지음 / 학고재 / 2007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 버티지 못하면 어찌 하겠느냐. 버티면 버티어지는 것이고, 버티지 않으면 버티어지지 못하는 것 아니냐..... 김상헌은 그 말을 아꼈다. ... 죽음을 받아들이는 힘으로 삶을 열어나가는 것이다. 아침이 오고 또 봄이 오듯이 새로운 시간과 더불어 새로워지지 못한다면, 이 성 안에서 세상은 끝날 것이고 끝나는 날까지 고통을 다 바쳐야 할 것이지만, 아침은 오고 봄은 기어이 오는 것이어서 성 밖에서 성 안으로 들어왔듯 성 안에서 성 밖 세상으로 나아가는 길이 어찌 없다 하겠느냐.....

p.61

 

시간은 흘러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고, 모든 환란의 시간은 다가오는 시간 속에서 다시 맑게 피어나고 있으므로, 끝없이 새로워지는 시간과 더불어 새롭게 태어나야 할 것이었다. 모든 시간은 새벽이었다. 그 새벽의 시간은 더럽혀질 수 없고, 다가오는 그것들 앞에서 물러설 자리는 없었다. 이마를 땅에 대고 김상헌은 그 새로움을 경건성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p.237

 

-- 제발 예판은 길, 길 하지 마시오. 길이란 땅바닥에 있는 것이오. 가면 길이고 가지 않으면 땅바닥인 것이오.

김상헌이 목청을 높였다.

-- 내 말이 그 말이오. 갈 수 없는 길은 길이 아니란 말이오.

p.269

 

 

김훈, <남한산성> 中

 

 

+) 이 소설은 병자호란 당시, 남한산성에 갇힌 무력한 인조 앞에서 벌어진 주전파와 주화파의 다툼, 그리고 기울어가는 조국의 운명 앞에서 고통 받는 민초들의 삶을 내용으로 쓰여졌다. 글을 읽는 내내 세력 다툼을 하는 신하들의 모습보다 진심으로 걱정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이내 그들의 염려가 진정 나라와 백성을 위한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어쩌면 그들에게 우선은 임금이 아니었을까.

 

임금을 위해 사공을 칼로 벤 김상헌의 행동이 과연 정당화될 수 있을까. 나라를 위해서라는 것은 버젓한 핑계가 아닐까 싶다. 사공의 말대로 임금을 모시고, 사대부들을 강 건너까지 안내했으나 그에게 남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러니까 그가 청나라 군인들을 강 건너로 안내하고 식량이라도 받을 생각을 하는 것이다. 이게 현실이지 않을까. 정작 높은 신분, 혹은 명예를 생각해서 그들이 한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역사 소설을 좋아하지 않는데 이 책은 참 재미있게 읽었고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그러면서도 당시 사대부의 허위의식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백성들이 고통스럽게 살았을지 짐작되었다. 김훈은 인물의 내면 심리를 잘 그려내는 작가라고 생각된다. 그것을 직접적으로 제시하기 보다 행동과 말을 통해서 그들을 속속들이 보여준다. 그것은 독자로 하여금 부담스럽지 않고, 충분히 인물을 머릿속에 그려보게 만든다. 감동적인 역사소설이 그립다면 먼저 이 책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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