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
노희경 지음 / 김영사on / 2008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그대와 헤어져 20년이 흘렀다.
 그 20년의 세월 안에서 나는 정말 뚜렷이 알아차린 것이 있다. 진실이나 사실이란 말은 함부로 써서는 안 된다는 것, 모든 기억은 내 편의대로 조작될 수 있다는 것. 하여, 이제 내가 말하려는 우리 둘 사이에 있었던 에피소드는 어쩌면 또다시 나만의 기억일 뿐 그대와는 무관한 어떤 것일 수도 있다. 그러니 혹여 내 서수이 그대의 마음과 아랑곳없더라도 웃으며 봐달라. 이 사람은 이리 생각했었구나 하고.

p.18

 

"나는 나의 가능성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당부하건대, 해보고 말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해도 안 되는 것이 있는 게 인생임도 알았음 한다.

 근데 그 어떤 것이 안 된다고 해서 인생이 어떻게 되는 것은 또 아니란 것도 알았음 싶다.

p.38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산다는 건, 늘 뒤통수를 맞는 거라고. 인생이란 놈은 참으로 어차구니가 없어서 절대로 우리가 알게 모르게 앞통수를 치며 오는 법은 없다고.

 나만이 아니라, 누구나 뒤통수를 맞는 거라고. 그러니 억울해 말라고. 어머니는 또 말씀하셨다. 그러니 다 별일 아니라고. 하지만, 그건 육십 인생을 산 어머니 말씀이고. 아직 너무도 젊은 우리는 모든 게 다 별일이다. 젠장.

p.103

 

아이에서 어른이 된다는 건

자신이 배신당하고 상처받는 존재에서

배신을 하고 상처를 주는 존재인 걸 알아채는 것이다.

p.148

 

 

노희경,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 中

 

 

+) 노희경 작가가 쓴 드라마의 대부분을 보지 못했다. 그건 내가 드라마를 즐겨보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일텐데. 그러나 간혹 스치듯 본 장면이라든가, 혹은 우연히 한 두 회를 본 것이 기억에 남는다. 제목이 뭐였더라. 정확히 떠오르지 않지만, 고두심이 치매에 걸린 엄마로 등장해서 자신의 가슴에 빨간 약을 칠하면서, 가슴이 아프다고 중얼거렸던 장면이 잊혀지지 않는다. 어떻게 저렇게 가슴 아프다는 말을 또렷하게 그려낼 수 있을까.

 

드라마나 영화나 소설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표현하는 양식의 차이이지 삶과 사람 이야기를 하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드라마나 영화같은 영상물의 영향은 우매한 사람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생각하지 않고 받아들이기만 하는 사람들에게는 약이기도 하면서 독약이기도 하다. 그런 것을 생각한다면 난 노희경 작가의 글을 매우 유익한 것으로 생각하고 싶다.

 

<그들이 사는 세상>의 몇 회를 보았다. 저런 대사를 어떻게 썼을까 싶을 정도로 송혜교의 입에서 튀어나오는 글자들을 외우고 싶었다. 이 책에 적힌 대사 몇몇을 보면서 다시 볼 수 있음에 감사했다. 새삼스럽게 드라마 대본에 흥미가 생기기도 했고. 나는 이 작가가 자신의 뚝심 그대로 세상을 보는 눈을 버리지 않고 살았으면 좋겠다. 더 오랜 시간이 지나도 가슴에 남을 드라마를 만들었음 좋겠다. 그리고 이렇게 가끔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는 책으로 만들어 냈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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