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일 - 2008년 제4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백영옥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8년 4월
평점 :
절판


그 때 알았다. 남자와 여자 사이에서 일어난 모멸감은 절대로 학습되지 않는다는 걸.

실연을 이미 경험했다고 해서 그것이 조금 더 견딜 만한 것이 되거나, 그럭저럭 삼킬 만한 것이 되진 않았다. 애인과 헤어진 지 1년이 다 되었는데도 그때의 모멸감은 전혀 사라지지 않고 내 마음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p.43

 

고등학교 동창인 여자 친구들 사이의 우정이란 그런 것이다. 한 남자에게 똑같은 증오의 눈길을 보내고, 동시에 열광하는 것. 어느덧 남자에 대한 취향은 비슷해지고 싫어하는 것도 비슷해진다. 10년 동안 한 침대를 쓴 부부처럼.

p.137

 

과거가 무슨 소용인가.

미래가 무엇을 말해줄 수 있나.

언제든 이 삶이 무너져버릴 수 있는데. 현재를 빼면 사람들에게 남는 게 뭔가.

섭외는 지금이 아니면 기약 없고, 인터뷰 또한 당장이 아니면 곤란하다. 약속은 언제든 깨질 수 있다. 활영은 당장 취소될 수 있으며 지면은 예고 없이 밀고 들어오는 광고들로 쉽게 사라질 수 있다. 그건 꼭 잡지쟁이들의 삶에만 해당되는 건 아닐 것이다.

그러므로 나에겐 언제나 지금이 가장 중요했다.

p.166

 

 

백영옥, <스타일> 中

 

 

+) 가벼운 소설일꺼란 편견을 갖고 있었는데 그래도 제법 기특(?)하게 작가는 자신의 생각을 서사적으로 이야기 속에 녹이는 재주가 있다. 장편소설을 쓰면서 그러한 작가의 생각을 등장인물의 말 속에서, 사건 속에서, 배경 속에서 드러내기가 쉽지 않을텐데, 백영옥은 꽤 오래도록 이 소설을 준비한 사람처럼 치밀하게 구성했다.

 

이 책은 현대인. 그러니까 서른의 여성이 이 도시에서 살아남는 법을 보여준다. 패션 잡지사의 기자로서 어떻게든 일을 완성해가는 과정 속에서 부딪히는 고난과 괴로움을 극복하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자신의 사랑을 찾는 것, 남자를 만났을 때 혼자 품게되는 엉뚱한 생각들을 잘 그려냈다. 여자라면 누구나 한번쯤 이런 이야기에 공감하지 않을까.

 

66사이즈를 입고 있는 그는 현대 여성의 표본이다. 다이어트를 하려고 약을 먹고, 커피로 식사를 떼우며, 담배로 하루를 시작하는 여성이다. 물론 그렇지 않은 여성도 있겠으나, 그녀가 이 소설에서 주인공으로 삼은 서술자는 그러한 캐릭터로 자신의 자유분방함을 과시하고 있다. 그것은 자유이면서 책임이고, 자신의 삶에 대한 주관이기도 하다.

 

주관대로 사는 삶, 그것이 과거에 연연하거나 미래를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현재, 지금만을 생각하는 삶이라고 작가는 말하고 있다. 자유를, 주관을 선택해서 괴로움을 겪기도 하는 현대 여성을 보고 공감하고 싶다면 이 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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